“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올랐는데 은행도 이에 맞게 올려 주십시오.”(A시중은행 부행장)

“은행의 사회공헌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늘어 수익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등급 상향은 어렵습니다.”(무디스 애널리스트)

지난해 말 국내 시중은행들의 신용등급을 평가하기 위해 방한한 무디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A은행과의 면담에서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며 “이런 가운데 한국 은행들이 각종 사회공헌 활동을 늘리면서 수익성마저 악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3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들이 더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커지자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이 문제를 평가 산정 항목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도 “사회공헌 활동이 은행의 건전성과 수익성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국내 은행들이 신용등급을 받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무디스는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으로 ‘A1’을 주고 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Aa3)보다 한 단계 낮은 것이다.

무디스가 지난해 말 국내 시중은행들에 보낸 질문지에는 “대출이자와 각종 수수료율 인하, 중소기업 지원 확대 등 은행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이 은행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해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은 은행 규모에 따라 1년에 한 차례에서 많으면 네 차례까지 한국을 방문해 평가 작업을 벌인다. 통상 방한하기 한 달여 전 사전 질문지를 보내는데, 은행의 공공성 확대를 우려하는 질문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은행 관계자는 “질문을 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답변을 평가에 활용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무디스 등은 답변과 면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용등급 변화 유무 등을 통보한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최근 은행들에 보낸 질의서에서 “한국의 은행업에 대한 정치·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이 같은 의문은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은행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은행들은 지난해 9월 일제히 대출금리 및 수수료 인하,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 조정) 상품 출시 등을 담은 서민금융 대책을 발표했다. B은행 관계자는 “신용평가사들은 가계대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공헌에 따른 비용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수익성이 더 악화할 경우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오는 3월 말~4월 초께 가질 정례 미팅에서 사회공헌에 대한 신용평가사들의 질문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C은행 관계자는 “신용등급 상향을 위한 공격적 행보보다는 유지하는 쪽으로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김일규/이상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