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육성과 창조경제 같은 차기 정부의 핵심 정책을 차질 없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산업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23일 서울 중림동 사옥에서 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의 ‘모험자본’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장기 투자펀드에 대한 세금 혜택을 주고 기관투자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본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위기에 빠진 자본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좌담회에는 김용범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하영춘 한국경제신문 증권부장이 맡았다.

▷사회=금융투자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유상호 사장=작년 4월부터 9월까지의 실적을 보면 61개 증권사 가운데 적자를 낸 곳이 15곳,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곳이 9곳입니다. 증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평균 3.2%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년에도 6.6%였습니다. 그만큼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할 수 있죠.

▷조재민 사장=80여곳이 넘는 국내 자산운용사 가운데 약 40%가 적자 상태입니다. 자본금이 작아 외부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중소형사들이 특히 좋지 않습니다.

▷사회=이런 상황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인지 궁금합니다.

▷김형태 원장=구조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이 감소한 데에는 기관투자가 비중이 커지면서 주식회전율이 떨어진 영향이 크고요. 증권사들이 과도한 경쟁을 벌여 수수료율을 낮춘 것도 한 요인입니다. 뭔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김용범 국장=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투자업이 예전의 수익성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국내 금융투자회사들은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데요.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거죠.

▷사회=작년 상장사들의 유상증자 실적은 전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습니다.

▷유 사장=자본시장을 살리려면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갖춰야 합니다. 퇴직연금에 돈이 들어오고 있으나 대부분 확정급여(DB)형입니다. 주식투자비중은 3%에 불과합니다.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제한을 풀어 외국처럼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 사장=장기투자성격을 가진 연기금이 더 활발하게 자본시장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결책입니다.

▷김 국장=공감합니다. 작년에는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확산되면서 자본시장이 특히 좋지 않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올해는 이런 현상이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요기반을 확충하는 것 못지않게 자본시장에 새로운 기업들이 많이 진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3의 주식시장으로 불리는 코넥스(KONEX)가 설립되면 창업 초기 기업들이 자본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계획입니다. 중위험·중수익 추구현상을 반영해 상장지수펀드(ETF)를 다양화하는 등 새로운 상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금융투자업계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물론 규제가 강한 것이 한 원인이겠지만요.

▷김 원장=저금리·저성장 기조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에 대한 투자자들의 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주가연계증권(ELS)이 많이 팔리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따라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들은 이런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ETF도 합성ETF를 비롯해 좀 더 다양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김 국장=해외투자 상품을 적극적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한국은 더 이상 고도성장 국가가 아닙니다. 인도네시아 터키 폴란드 등 빠르게 발전하는 신흥국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금융투자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발굴해 제공해야 합니다.

▷사회=다양한 상품이 없는 데에는 시장을 주도할 만한 대형 회사가 없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만.

▷김 국장=일정 규모 이상 기업집단은 대부분 증권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인수·합병(M&A)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을 쪼개 분점하는 형태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에서는 대형사를 육성하고 중소형사를 특성화하기 위해 규제나 인가 정책을 바꾸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 사장=M&A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로 보입니다. 오너 경영 문화 때문에 웬만해서는 기업을 매각하려 하지 않는 거죠.

▷사회=금융투자산업 발전을 위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유 사장=그동안 경제민주화나 상생 등이 이슈가 되다 보니 자본시장을 보는 시각도 자연스럽게 금융소비자 보호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자본시장이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줬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시하는 중소기업 육성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줄 수 있는 곳은 바로 자본시장입니다.

▷조 사장=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민들을 위해 장기투자펀드에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죠. 국내 투자자들의 장기투자 기반을 마련하고 자본시장에 다각도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인 만큼 반드시 시행됐으면 합니다.

▷김 원장=새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펼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를 재정만으로 충당할 수는 없죠. 결국은 자본시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자본시장 제도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 국장=국민소득 수준이나 인구구성을 보면 향후 5년은 한국에 남은 마지막 성장 기회입니다. 일자리 창출, 중산층 70% 복원,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과 같은 정부 정책도 결국 새로운 성장스토리를 쓸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들 과제도 대부분 자본시장이 잘 발전돼야만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리=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

■ 참석자

김용범 금융위 자본시장국장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
유상호 한국투자증권사장
조재민 KB자산운용 사장

사회=하영춘 한경 증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