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제조업에서 제약업까지. IBM의 변신이 눈부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IBM이 병원 등에서 환자의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향균젤 개발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반도체 제조에 이용되는 기술을 제약 분야에 적용한 결과다.

IBM은 해당 기술을 바탕으로 페니실린 등 항생제를 대체하는 ‘블록버스터 신약’(판매량이 많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81년 최초의 개인용컴퓨터(PC)를 내놓은 뒤 2005년 컴퓨터 제조를 완전히 접고 기업 컨설팅 회사로 변신했던 IBM이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부임한 버지니아 로메티 IBM 최고경영자(CEO)는 “장기적 전략으로 혁신을 이어갈 것” 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기술로 약품 제조

반도체의 정보 전달을 빠르게 하는 화합물이 IBM 항균젤의 원료가 됐다. 나노의료기술이 결합되면서 약품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를 위해 IBM은 바이오공학 및 나노의료기술 관련 기업들과 4년간 협업을 진행해왔다. 밥 앨런 IBM 신물질화학연구소 이사는 “반도체 관련 도구와 기술이 여러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IBM은 항균젤이 병원과 수술실 소독에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술은 수술 및 진료도구의 항균 코팅 크림, 환자에게 투여하는 항생제 제조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일반적인 항균물질이 병원균의 세포막을 투과해 내부를 교란시키는 반면 IBM의 항균젤은 세포막 자체를 제거해 병원균을 없앤다. 따라서 병원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짐 헨드릭 IBM 연구원은 “항균젤은 병원균 자체를 제거하므로 내성을 키울 시간이 있었던 기존 항생제와 다르다”고 말했다.

글로벌 항생제 시장은 2016년 600억달러(약 64조4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2011년 IBM의 전체 매출은 1069억달러였다. FT는 “병원에서 이용하는 컴퓨터 네트워크와 기기를 제공해온 IBM이 이제는 약품 자체를 공급하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IT와 BT 융합 촉진될 듯

정보기술(IT)을 그대로 생명기술(BT)에 적용한 IBM의 순발력은 1990년대 이후 20년 넘게 이어져온 혁신의 연장선에 있다. 컴퓨터 부문 매출 성장이 한계에 부딪친 1993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루 거스너는 “이제 PC는 모두 잊어라”며 인터넷 사업에 집중했다. 2002년 바통을 이어받은 샘 팔미사노도 IBM의 모습을 소프트웨어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회사로 정하고 기업 구조를 혁신했다.

이를 위해 IBM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와 프린터, PC 등 과거 주력 사업군을 줄줄이 매각했으며 소프트웨어 및 IT 서비스, 바이오 등 신사업 관련 회사 100여개를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1998년 44%였던 하드웨어 분야 매출 비중은 2011년 16.7%까지 쪼그라들었고 기업 컨설팅 등 서비스 사업 비중이 53%까지 늘어났다.

IBM의 약품 개발로 IT 업체들의 의료산업 진출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미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04년 영국 생명공학회사 에머션을 인수해 GE헬스케어를 설립했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컴퓨터단층촬영(CT), 엑스레이 등 진료장치 제조에 그쳤던 관련 사업영역을 세포연구와 단백질 정제 등 신약개발 솔루션 제공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2010년 의료기기 업체 메디슨을 인수하며 헬스케어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