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간인 월북 사고와 관련된 재판 때문에 재판부와 함께 휴전선 철책 경계 실태를 직접 살펴본 적이 있다. 군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나는 물론이고 같이 갔던 재판부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만 떨어져도 보이지 않는 강원도의 그 험준한 산악에 설치돼 있는 철책선 1.8㎞ 정도를 아무런 장비의 도움 없이 병사 몇 명의 눈에 의존해 경계하고 있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물 샐 틈 없는 경계를 하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땅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장담하던 인사들이 경쟁적으로 군 복무기간과 병력을 줄인 탓에 병사들이 책임져야 할 지역만 넓어져 자연히 경계 밀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철책이 뚫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돼버렸다. 바로 그 지역에서 북한 병사가 철책을 넘어 귀순한,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은 병력 축소에 따른 우리 경계 시스템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군 복무기간을 줄이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공약하면서 불을 지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투표 하루 전 전격적으로 복무기간 단축을 공약했다. 그러나 군 복무기간 단축은 안보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 만큼 병력 수와 예산, 우리가 처한 안보 현실 등을 꼼꼼하게 따진 뒤 결정해야 한다.

단축땐 사병수 3만명 감소…부사관 충원에 年 8000억

우선 외부 환경을 보자. 일본은 극우세력이 집권하면서 팽창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도 군사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오랜 동맹관계인 미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발 멀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김정은 체제로 바뀌면서 체제 유지를 위해 더욱 강하게 선군(先軍)정치를 외치며 무력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120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유지하면서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휴전선 일대에 수많은 장사정포를 배치해 수도권을 사정거리 내에 두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본토에 다다를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3차 핵실험을 실시하겠다고 공언하며 우리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의 내부 환경은 어떠한가. 정전기간이 길어지면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 등과 같은 일을 당하면서도 안보의식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우리 내부의 이념 갈등은 점점 그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력 증강이나 신규 사업에 관한 예산을 획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우리의 안보 상황은 이전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전투력이 약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정부에서 ‘국방개혁 2020’으로 복무기간 단축을 들고 나왔을 땐 국방예산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9% 정도 지속적으로 확보해 첨단장비를 도입하고 부사관을 충원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예산 확보라는 전제 자체가 따라주지 못함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했다.

복무기간 단축과 관련,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예산의 문제다.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면 사병의 수가 3만명 이상 줄어들어 그 공백을 부사관으로 충원해야 한다. 이럴 경우 대략 매년 800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그에 따른 장비까지 감안한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소요된다. 새로 출범할 정부에서는 기초노령연금이나 의료복지 보장 등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 여파로 당장 올해 전력 증강을 위한 국방예산이 5000억원 가까이 삭감됐다. 앞으로도 국방예산이 어떻게 책정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또 병사들의 숙련도는 전투력과 직결되는 무형적인 요소다. 특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숙련도를 높이는 데 평균 18개월 정도가 걸린다. 복무기간이 단축되면 순환주기가 짧아져 숙련도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북한군의 복무기간이 평균 10년임을 감안한다면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추세로 나가면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역자원 부족으로 현역 정원을 정상적으로 채우기 힘들어진다. 현재의 출산율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할 때 현역 50만명을 기준으로 2020년까지 평균 매년 약 3만명의 현역 자원이 부족하게 되고 특히 2030년 이후에는 매년 약 7만명의 자원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기간 줄면 장교 지원도 줄어 우수인력 확보 더 어려울 듯

문제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병과 부사관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줄어든 사병 자리를 부사관으로 메워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필요한 만큼 부사관들이 충원될 수 있을 것인가도 관건이다. 단기 복무 장교들의 복무기간이 사병보다 거의 1년이나 길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매년 약 7000명 이상이 필요한 초급장교의 확보가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점도 회의적이다.

병 복무기간이 짧아지면 대학생들의 장교 지원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양질의 장교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군 복무기간 단축은 또 사회의 다른 제도와 관련돼 있어서 잘못하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당장 병역의무의 이행을 갈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를 비롯한 다른 대체복무제도의 지원자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많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더욱 약화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을 노출시킬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안보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뚜렷한 대책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 문제를 바로 시행하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놀랍기까지 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안보환경이 바뀌고 여건이 성숙되면 언제라도 그때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된다. 이게 어디 쉽게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있는 문제인가.

한번 단축한 복무기간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다시 늘리기 어렵다. 군은 단 1%의 가능성에 대비해 100%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새삼 생각난다. 분명히 지금은 복무기간 단축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

김창해 < 변호사(법무법인 정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