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박스 창업자인 하형석 대표는 오래 고민하기보다 몸을 던지고 빨리 배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떠오른 생각을 즉각 행동에 옮긴다. 거침없다.

2002년 경희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한 학생 하형석. 대학생이 되면 다들 용돈도 벌 겸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는 쇼핑몰에서 운동화를 파는 일을 했다. 프리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운동화가 매매되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고가 운동화에 대한 수요가 많던 시절, 정가보다 싸게 제품을 받아다 쇼핑몰에서 팔았는데, 제법 잘됐다.

8개월 정도 하던 그가 사업을 그만둔 것은 학업 때문이 아니라 건강 때문었다. “제가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나 봐요. 건강이 나빠졌는지 의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중단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놓고 그는 그다음 해 바로 다른 사업을 했다. 이번엔 군고구마 장사. 왜 이걸 하려고 했는지, 자신도 모른다. 그저 남들이 보기엔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현금을 벌기에 이것만큼 좋은 사업이 또 있을까 싶어요. 고구마 한 박스를 팔면 14배가 남는 장사였어요. 초기에 이것저것 투자비용을 감안해도 장사를 시작한 바로 그날 손익분기점(BEP)을 돌파했죠.”

◆ 군고구마 장사에서 쇼핑몰 운영까지

강남역 인근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도 잘 잡았다. 친구와 둘이서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800만 원을 벌고 둘이서 중고차를 한 대 뽑았다. 장사는 무지하게 잘됐다. 오후 6시부터 8시 30분까지 2시간 30분만 하면 충분했다. “나중엔 아파트에 전단지를 붙이고 배달까지 했어요. 친구 하나가 더 달라붙었죠. 너무 장사가 잘됐는데 겨울이 끝나서 그만뒀죠. 군대도 가야 했고요.”(웃음)

군대에서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나가게 된다. 거기서 미국 병사들과 알게 됐다. 그런데 이 병사들이 그를 미국에 있는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미국 생활을 경험한 휴학생 하형석. 한국에 돌아올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런데 부모님을 설득할 방법이 별로 없었다. 설득하기보다 ‘어쩔 수 없게라도 남아야겠다’고 생각해 미국 친구(미군 병사) 집에 머무르면서 진학 준비를 했다. 그리고 뉴욕의 패션스쿨에 입학했다.

한국에서는 공대에 입학했던 그가 미국에서는 패션을 전공으로 했다는 것도 특이하다.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그 쪽에 승부를 던진 셈이다. 패션 마케팅을 전공한 그는 2009년 학교를 졸업한 직후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톰 포드가 설립한 톰포드사에서 일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2010년 8월 다시 회사를 설립했다. 이번엔 패션 디자인 분야였다.

물론 하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그가 하는 일은 패션 디자이너들을 위한 효과적인 마케팅이었다. 그는 회사를 차려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때 티켓몬스터(이하 티몬)에서 연락이 왔다. 티몬의 창업자 중 하나인 김동현 이사가 패션·뷰티 분야 서비스 론칭을 위해 그를 찾은 것이었다.

“회사 대 회사로 계약했어요. 제가 1주일에 2~3번 정도 티몬에 가서 패션·뷰티 관련 업무를 하는 내용이었죠. 팀 세팅도 하고 마케팅 기획도 했어요. 그런데 티몬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나중엔 티몬 일이 주된 일이 될 정도였죠.”

티몬과 일하면서 그는 소셜 커머스라는 분야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생각한 것은 정기 배송 서비스다. 화장품 분야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생각했다. 화장품 샘플을 업체로부터 무료로 받아 소비자에게 유료로 판매하는 것.

물론 그 대신 업체의 마케팅을 해주는 사업이다. 소비자는 저렴한 비용으로 신상품을 계속 써 볼 수 있고 화장품 업체는 고객을 늘릴 수 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했을 때 국내에서는 이미 글로시박스가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후발 주자라도 좋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아직 시장이 아주 초기라고 봤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리테일브로커 출신의 김도인 이사, 화장품 브랜드 유통업을 했던 이재호 이사 2명이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다. 아이디어를 제안한 하형석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초기에 이들의 사업 자금은 3500만 원. 최고기술책임자(CTO)도, 디자이너도 없이 서비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법인 설립이 2011년 12월 1일, 서비스가 출시된 것은 2월 7일이었다. 69일이 걸렸다. “홈페이지 제작은 외주에 맡기고 우리는 서비스 기획만 한 거죠. 시작은 소호 사무실을 빌려서 했어요.”

미미박스는 3월에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회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를 주문하고 결제하고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정품도 구매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 모바일과 해외 진출 적극 추진

후발 주자인 미미박스는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 나갔다. 2월에 여성 대상 화장품을 출시한 뒤 3월에는 아기 용품을 출시했고 4월에는 남성 용품으로 확대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의류와 면도기 등 다른 용품으로도 확장했다. 그런데 화장품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잘 안 됐다. 그래서 결국 화장품을 빼고는 전부 접었다.

“너무 이른 시일 내에 너무 많은 카테고리에서 사업을 했던 것 같아요. 화장품을 제외하곤 시장의 반응도 그때그때 오지 않았고요. 직원은 늘어나고 비용은 급증하는데 돈이 안 됐죠. 이때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빨리 결정을 내린 하 대표는 화장품 분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발 주자인 글로시박스와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샘플만 팔지 않고 정품을 팔기로 했다. 예를 들어 이번 달에 샘플을 받아본 사람은 다음 달에 그 제품을 써 보고 마음에 들면 미미박스 홈페이지에서 정품을 구매하는 식이다.

그는 미미박스의 화장품 박스 판매가 월 5000개 정도에 이르렀을 때 어떤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회원 수 증가 속도가 급격히 둔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CJ E&M과 제휴해 온스타일(On Style)에서 매주 정기적으로 방송을 내보낼 수 있게 됐다. 겟잇뷰티라는 코너를 통해 2주에 28회씩, 한 달에 56회 상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방송이 나가고 1주 만에 회원이 8000명 늘면서 그는 미디어 파워를 실감했다. “이때 1차 한계를 극복했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그 뒤로 회원이 계속 늘어 지난해 말 현재 지금은 월 정기 배송 물량이 2만 박스 정도 됩니다. 연말에는 5만 박스로 늘어날 것 같아요.”

그는 올해 모바일 진출로 두 번째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이를 위해 모글루 출신의 김남수 CTO를 영입했다. 김 CTO는 모바일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을 총괄하게 된다. 3월에 모바일 서비스가 시작되면 회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를 주문하고 결제하고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정품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하반기에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제품을 확대하다가 잘 안 되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아직은 경영자로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죠. 모바일 시장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그래도 분명한 것은 우리 서비스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입니다. 소비자는 정품이나 다름없는 샘플을 싸게 쓸 수 있고, 업체는 온라인 마케팅뿐만 아니라 방송 등 미디어와 오프라인 마케팅까지 우리와 함께할 수 있어요. 마케팅 파트너인 셈이죠.”

임원기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wonk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