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존슨 미국 대통령을 워커힐호텔 만찬장으로 초대했을 때다. 리셉션이 시작된 직후 갑자기 정전이 되며 온통 깜깜해졌다. 1분쯤 지난 뒤 불이 들어오자 박 대통령만 자리에 서 있었을 뿐 존슨은 보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까봐 긴장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미국 경호원들이 미리 벽면에 설치해둔 회전문을 통해 존슨을 대피시켰던 것이다. 당시 민주당 의원으로 만찬에 참석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미국의 빈틈없는 경호에 감탄했다”고 회고했다.

미국에서 경호가 발달한 것은 총기 3억1000만자루(미국총기협회 추산)가 풀려있어 대통령 피격 위협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위조화폐와 유가증권 감시를 위해 1869년 창설된 SS(Secret Service)가 경호를 맡는다. 3500명에 이르는 특별수사요원 대부분이 석·박사급이란다. 2011년 요원 선발에는 1만5600여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었다.

우리도 공채로 경호원을 뽑는다. 7급 특정직에 준하는 국가공무원이다. 시험과목에 무술은 없으나 경호실에 들어가면 특공무술 태권도 유도 검도 등 국가공인 무도 3단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20단 이상 무술 고수도 수두룩하다.

경호원 하면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폼 잡는 모습을 연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경호근무 중이 아닐 때도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하고, 규율도 엄하다. 공사(公私)생활에서 한시도 빈틈을 보여선 안 된다. 한때 ‘팬티까지 다려 입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정도다. ‘절대 보증을 서지 말라’는 공문서를 축소 복사한 다음 코팅해서 넣고 다닌 적도 있다. 유사시 목숨을 내놓을 각오도 해야 한다. 차지철 경호실장 시절엔 집무실에 ‘각하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는 표어를 붙여놓기도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호처를 경호실로 한 단계 올린 것을 놓고 뒷말이 많다. 부모를 흉탄에 잃고 본인도 ‘커터 칼’ 테러를 당한 박근혜 당선인의 트라우마 때문 아니겠냐며 공감하는 의견도 있긴 하다. 그러나 굳이 ‘작은 청와대’ 기조를 깨면서까지 장관급 조직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잇따른다. 선진국 중에도 경호실장이 장관급인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SS 수장은 차관보급이고 독일 프랑스 일본 등도 차관보급이나 국장급이다.

과중한 업무 개선에 대한 경호처 요구를 수용한 조처로, 인원을 늘리지 않는 사기 진작용이라는 인수위측 해명도 아리송하다. 과거와 같은 ‘막강한 권부’로 회귀할 일이야 없겠지만 지위 격상보다는 과학 경호 강화에 방점을 찍는 게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