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집권 이후 일본은 양적완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일명 ‘아베노믹스’로 통하는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율 목표를 1%에서 2%로 상향 조정해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 국채를 대량 발행하며, 엔화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난 가두연설에서는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면서 확고한 확대통화정책을 표방했다.

전반적인 세계 경제침체 속에서 미국의 3회에 걸친 양적완화와 재정위기로 인한 유럽연합(EU)의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 등의 여파로 달러 및 유로화의 가치는 지속 하락한 반면 엔화의 가치는 상대적으로상승했다. 그로 인해 일본은 수출 경쟁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중앙은행이 의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엔화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외환시장에서의 원·엔 환율은 작년 10월에 100엔당 최고 1383원이었으나 지속적으로 하락, 올 들어 지난 18일 1174원까지 떨어졌다.

현재 한국의 채권시장은 일본의 양적완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본의 엔저정책으로 인해 우리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봐 채권시장은 강세로 바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외국인이 엔캐리트레이드를 통해 한국의 채권을 매입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국채를 보유한 외국투자자 가운데 1%만 한국 국채로 이동하더라도 국내에 10조원 규모의 자금이 유입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통화를 발행해서 시중 유동성을 늘리면 화폐 가치가 하락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적절한 인플레이션이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베노믹스’의 2% 물가상승 목표 달성을 위한 양적완화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시의적절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일본의 노골적인 엔저 정책으로 인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국제적인 환율전쟁으로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23일 개막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는 독일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일본의 노골적인 양적완화를 비난했고 주요 20개국(G20) 차원의 견제를 예고하는 등 다음달 G20 회의는 환율전쟁의 중심부가 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단기부양의 효과는 있으나 국채이자 상승 등 중장기적 비용을 수반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해명과 직접적인 이해를 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세계경제의 위기극복 공조보다는 국가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앞으로 세계경제가 이런 양상으로 움직인다면 한국의 피해는 상당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더 높기 때문에 환율에 매우 민감하다. 일본과 경쟁하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500여개의 부품 협력업체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또 엔화가치가 1% 떨어질 때마다 현대차의 수출 물량도 1만대씩 감소하게 된다. 삼성전자 등 국내 전기전자 업체들도 영업이익의 하락을 예상하고 있으며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아래로 하락할 경우 버티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 수단은 무엇일까. 단기적으로는 시중의 외화를 매입함으로써 환율을 방어할 수 있다. 이는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게 되고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으므로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정책은 수출기업이 수출지역과 품목을 다변화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여건을 조성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수출기업이 연구·개발(R&D) 부문의 지출을 늘려서 품목 다변화와 품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현재 각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우리 기업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있어야 각국의 양적완화 태풍에 대응할 수 있다.

조하현 < 연세대 교수·경제학 hahyunjo@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