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까지 넘보는 IBM의 변신이 놀랍다. 1981년 최초의 PC를 내놓은 IBM은 한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대 하드웨어 업체였다. 그 뒤 후발자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2005년 컴퓨터 제조를 접고 기업 컨설팅을 주력으로 하는 서비스 회사로 화려하게 재탄생한다. 그런 IBM이 환자의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항균젤 개발에 성공했다는 보도다. 페니실린 등 기존 항생제를 대체할 블록버스터 신약개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IBM의 거듭된 변신은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끝없는 도전의 결과다. 이번 제약업 진출도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의 융합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제너럴일렉트릭(GE) 등도 이 분야 진출을 선언한 터여서 앞으로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IBM의 도전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새로운 인력을 수혈하고 수많은 관련 회사를 인수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번 항균젤 개발만 해도 바이오공학 및 나노의료기술 관련 기업들과 4년간 협업을 진행한 결과였다.

답답한 건 왜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활발하지 못한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자고 외친 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성과는 별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당장 대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려고 해도 그다지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기업환경이다. 새로운 인력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당사자의 선택은 무시한 채 이적료니 징벌적 손해배상제니 운운하며 연구원의 전직이나 이동 자체를 좋지 않게 보는 분위기다. 벤처기업 인수는 더욱 그렇다. 대기업의 인수를 약육강식의 관점에서 보는 세간의 인식과 정부 규제 때문에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다. 심지어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까지 동원해 대기업의 사업진출 자체를 막겠다는 식이다.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 분야로 변신을 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최근 삼성 LG SK 한화 등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미국 실리콘밸리로 달려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곳에서 연구소를 세워 핵심인력을 확보하고, 새로운 기업도 인수하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