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해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로 부상한 중국 레노버의 ‘역동성’은 우리 기업들엔 부러울 만하다. 레노버는 ‘스마트폰의 원조(元祖)’ 블랙베리폰을 만드는 캐나다 림이 매물로 나오자 “주주에게 이익이 된다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욕을 불태운다.

다른 중국 기업인 화웨이는 지난 주말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 애플에 이어 처음으로 3위에 올라 IT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시장조사회사 IDC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웨이는 1080만대를 팔아 점유율 4.9%로 3위를 차지했다. 1년 만에 판매량이 89.5% 급증했고, 무서운 속도에 경쟁사들은 기가 질렸다.

스마트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해온 애플이 주가 폭락으로 시가총액 1위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은 중국 신흥 강자들로부터 위협당하는 처지와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에 시장 절반을 내주고 중국 기업의 추격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 애플의 미래에 투자자들은 믿음을 거둬들인다.

야심찬 중국의 덩치 키우기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기로 한 ‘9개 업종에 대한 합병 및 구조조정 방안’이 글로벌 산업질서 재편에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2015년까지 연매출 1000억위안(약 17조원) 이상의 글로벌 전자업체 5~8개를 키우는 게 골자다. 연매출이 이미 1000억위안을 넘은 화웨이, 레노버, 하이얼 같은 경쟁자들이 쏟아져 나올 판이다.

“자유민주당이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을 구사하기로 결정했다”며 각국이 비판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엔저(低) 정책 후폭풍에 국내 간판 기업들조차 ‘고립무원(孤立無援)’ 지경이다. 원화가 ‘나홀로 강세’를 보이면서 작년 4분기 실적이 처참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각각 2000억원 이상 환손실을 입었다. 현대차는 해외 생산물량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3월1일부터 야간 근무없는 주간 연속 2교대를 도입, 국내 생산량은 8만대가량 줄어들게 돼 있다. 협력사들의 일감이 줄 게 뻔하다. 기아차는 수출단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은 납품단가 인하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국내 간판 기업 줄줄이 환손실

삼성전자는 작년 3분기 5700억원, 4분기 3600억원의 환손실을 입었다. 이러다가 우리 기업들이 기술력에서 중국에 쫓기고, 일본에 기술력은 물론 가격경쟁력까지 밀리는 ‘신(新)샌드위치 위기’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2007년 ‘일본은 앞서 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사이에 한국은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다’고 지적한 때보다 심각한 국면이다.

2월25일 출범하는 새 정부는 중소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를 뽑아주는 정책 마련에 바쁘다. 지난 주말 박근혜 당선인은 가시에 더해 ‘신발 속 돌멩이’를 들고 나왔다. 가시와 돌멩이를 중소기업과 서민 가슴에 던지는 ‘주범’으로 찍혀 있는 대기업들은 더 움츠러든다.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좋은 성적보다 비관적 전망을 널리 알려달라는 대기업의 읍소가 이어지는 것은 이런 연유다.

국가간 이기적인 기업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강한 기업’을 키우려는 정책 의지와 방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2008년 가을 터진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 우리 기업들은 중국과 일본 기업 사이에서 비교우위를 지키는 이른바 ‘역(逆)샌드위치 전략’으로 가장 먼저 벗어났다. ‘형님’인 대기업이라고 다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철강 조선 건설 등 생존을 걸고 사투 중인 대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다.

유근석 산업부장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