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아베, 엔저 도박 실패하면 日 '잃어버린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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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게임이론상 실패 확률 높아
각국간 대타협 있어야 효과있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각국간 대타협 있어야 효과있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글로벌 환율전쟁이 점입가경(漸入佳境)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세계 경제가 1930년대 겪었던 대공황의 실수를 재차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섀플리·로스가 창시한 ‘공생적 게임이론’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이드 섀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는 특별한 방법론적 설계가 어떻게 시장에서 참가자 모두에게 시스템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냈다. 이 이론을 토대로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안정성이 어떻게 특정시장 제도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냈다.
두 교수가 연구 발표한 ‘안정적 할당과 시장설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이론(theory of stable allocations and practice of market design)’은 공생적 게임이론을 적용해 최근의 글로벌 환율전쟁처럼 게임 참가자들이 위기국면에 처해 있을 때 모두가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양식(architecture)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종전의 게임이론과 다른 것은 목적이 사적 이익보다 공공선(善), 참가자 간 경쟁보다 협조,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점이다. 이 이론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엔저(低) 정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 갈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전자는 ‘엔저와 수출’로 상징되고, 후자는 물가 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자유민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간 침체에 빠진 것은 당시 일본은행 총재였던 미에노가 고집스럽게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을 펼친 것을 가장 큰 요인으로 봤다. 이 때문에 아베가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되, 이번에는 ‘일본은행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총재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해 왔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아베 정책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에 협조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인위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또는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각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브라질을 비롯한 브릭스(BRICs)에 이어 한국 등 인접국들이 가세하고, 독일 등 선진국 간에도 갈등이 심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일본이 조만간 엔저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환율전쟁이 무역분쟁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한 엔저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내수업체들이다. 일본 국민들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고통이 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체 에너지원(源)에서 수입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높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체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점도 주목된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해 이제는 ‘기업 내 무역(intra-firm trade)’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 통화도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화 비중을 40% 안팎으로 낮춰 놓았기 때문에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통상환경만 악화된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바라는 지속 가능한 회복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부터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엔저 정책은 내수산업들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수출마저 안 될 경우 일본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특정 목적을 겨냥해 정책요인만으로 유도된 엔저 정책은 게임 참가자들의 협조와 지지가 없으면 추세적으로 정착될 수 없다. 특히 발권력을 동원한 엔저 정책은 중앙은행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쉽게 무너진다. 아베가 엔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본은행에 거의 강압적인 수준에서 협조를 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 일본은행이 백기를 든 것을 계기로 중앙은행 변신과 관련해 금융위기 이후 간헐적으로 거론돼 왔던 ‘볼커 모멘텀’과 ‘역(逆)볼커 모멘텀’ 간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는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우선해야 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립성이 확실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신념이다. 반면 후자는 요즘처럼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는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물가 이외의 목표를 추진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중앙은행 독립성보다 정부와 협조해야 한다는 벤 버냉키 현 Fed 의장의 주장이다.
아베의 엔저 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지만 자국 내에서는 견제할 세력이 없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를 조기에 철회하거나 역플라자 합의와 같은 대타협이 없을 경우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이제는 각국이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정신(pro bono publico)’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로이드 섀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명예교수는 특별한 방법론적 설계가 어떻게 시장에서 참가자 모두에게 시스템적으로 혜택을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냈다. 이 이론을 토대로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안정성이 어떻게 특정시장 제도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냈다.
두 교수가 연구 발표한 ‘안정적 할당과 시장설계에 대한 실증적 연구이론(theory of stable allocations and practice of market design)’은 공생적 게임이론을 적용해 최근의 글로벌 환율전쟁처럼 게임 참가자들이 위기국면에 처해 있을 때 모두가 이득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양식(architecture)을 밝혀낸 것으로 유명하다.
종전의 게임이론과 다른 것은 목적이 사적 이익보다 공공선(善), 참가자 간 경쟁보다 협조, 그리고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점이다. 이 이론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엔저(低) 정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1990년 전후 ‘대장성 패러다임’과 ‘미에노 패러다임’ 간 갈등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전자는 ‘엔저와 수출’로 상징되고, 후자는 물가 안정과 중앙은행 독립성으로 대변된다.
자유민주당은 일본 경제가 1990년 이후 장기간 침체에 빠진 것은 당시 일본은행 총재였던 미에노가 고집스럽게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비타협적 통화정책’을 펼친 것을 가장 큰 요인으로 봤다. 이 때문에 아베가 총리로 재집권하자마자 엔저를 통해 성장을 추구하되, 이번에는 ‘일본은행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총재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해 왔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아베 정책은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 참가자인 각국에 협조보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인위적인 자국통화 평가절하를 통한 경기부양은 인접국 또는 경쟁국들에 고스란히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각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제는 브라질을 비롯한 브릭스(BRICs)에 이어 한국 등 인접국들이 가세하고, 독일 등 선진국 간에도 갈등이 심화하는 추세다. 독일은 일본이 조만간 엔저 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조치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환율전쟁이 무역분쟁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대책을 강구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한 엔저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내수업체들이다. 일본 국민들도 수입물가 급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경제고통이 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전체 에너지원(源)에서 수입 에너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높다.
가장 반겨야 할 수출업체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점도 주목된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 수출업체들이 해외로 진출해 이제는 ‘기업 내 무역(intra-firm trade)’이 보편화됐다. 수출결제 통화도 한때 80%를 웃돌았던 달러화 비중을 40% 안팎으로 낮춰 놓았기 때문에 엔저가 되더라도 채산성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통상환경만 악화된다.
아베의 엔저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바라는 지속 가능한 회복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내수시장부터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엔저 정책은 내수산업들을 더 어렵게 한다. 이 상황에서 수출마저 안 될 경우 일본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특정 목적을 겨냥해 정책요인만으로 유도된 엔저 정책은 게임 참가자들의 협조와 지지가 없으면 추세적으로 정착될 수 없다. 특히 발권력을 동원한 엔저 정책은 중앙은행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쉽게 무너진다. 아베가 엔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일본은행에 거의 강압적인 수준에서 협조를 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에 일본은행이 백기를 든 것을 계기로 중앙은행 변신과 관련해 금융위기 이후 간헐적으로 거론돼 왔던 ‘볼커 모멘텀’과 ‘역(逆)볼커 모멘텀’ 간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는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우선해야 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독립성이 확실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폴 볼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신념이다. 반면 후자는 요즘처럼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는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물가 이외의 목표를 추진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중앙은행 독립성보다 정부와 협조해야 한다는 벤 버냉키 현 Fed 의장의 주장이다.
아베의 엔저 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지만 자국 내에서는 견제할 세력이 없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이 양적완화를 조기에 철회하거나 역플라자 합의와 같은 대타협이 없을 경우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이제는 각국이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섀플리·로스의 ‘공생적 정신(pro bono publico)’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