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실리콘밸리 투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발전할 준비가 됐다. 이곳은 앞으로 삼성의 사업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8월16일 실리콘밸리 중심에 있는 새너제이시청. 김종중 당시 삼성전자 사장(부품부문 CFO)은 투자 이유를 이같이 소개했다. 그는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지사와 함께 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이 MOU엔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R&D) 용도의 빌딩 두 곳을 신축하고 감세 혜택을 받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이 새너제이에 반도체 등 부품을 연구하는 미주연구법인(SISA)을 세운 건 1988년. 눈에 띄는 활동 없이 조용했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미래 경쟁력이 소프트 파워에 달렸다는 판단 아래 실리콘밸리의 우수한 기술과 창의적 인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1월 새너제이 북부에 콘텐츠 서비스를 연구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아메리카(MSCA)를 세웠고 8월엔 새너제이 삼성반도체아메리카(SSI·미주판매법인) 건물을 10층 규모로 개축하기로 했다. 인근 마운틴뷰에는 SISA가 확장 이전할 3만5000㎡ 규모의 부지를 마련했다. 공사는 오는 4월 착공한다.

지난해 11월엔 스타트업(신생 기업) 투자를 담당할 이노베이션센터 두 곳을 세웠다. 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멘로파크에 스트래티지&이노베이션센터, 스탠퍼드대가 위치한 팰러앨토엔 오픈이노베이션센터를 설립했다. 두 곳 모두 애플이 자리잡은 쿠퍼티노와 10여㎞ 떨어져 있다. 이들 센터는 실리콘밸리의 혁신적 스타트업을 발굴해 회사뿐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등 핵심 인력까지 채용하는 방식(acqui-hire)으로 인수할 계획이다. 또 산하에 인큐베이팅센터인 액셀러레이터팀을 두고 공간 자금 인력 등 스타트업 육성에도 나선다.

스트래티지&이노베이션센터를 맡은 손영권 사장은 지난달 미국 언론과의 인뷰에서 “삼성의 플랫폼과 에코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 14일 새너제이 북부 1번가 2655에 자리잡은 MSCA를 방문했다. 삼성전자의 소프트파워 핵심 전략기지인 이곳은 설립 1년 만에 100여명의 직원들로 북적였다. 벽면에는 아이디어와 회의 내용을 적어놓은 메모가 가득했다. 서비스 전략 및 마케팅 책임자인 스티브 조 부장은 “실리콘밸리에선 수많은 혁신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혁신을 파악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략적으로 MSCA를 세웠다”고 했다.

직원 대부분은 개발자와 디자이너로 구글 애플 오라클 등에서 일했던 실력파다. MSCA 센터장인 커티스 사사키 전무는 애플 출신이고 조 부장도 야후 등에서 일하다 3년 전 옮겨왔다.

MSCA는 수원 MSC 본사가 세운 전략하에 실리콘밸리의 혁신 DNA를 활용, 삼성 기기에 들어갈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하는 일이다. 현재 세계에 퍼져 있는 약 1억대의 TV 스마트폰 PC 등 삼성 기기를 활용한 멀티스크린 서비스(다양한 기기를 간편하게 연결시켜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기능)를 개발하고 있다.

조 부장은 “MSC 본사는 이곳을 실리콘밸리에 맞춰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곳이 삼성의 콘텐츠 서비스 혁신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너제이=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