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도 반대하는데…대통령의 고집 왜?
“정권 말이 되면 온갖 곳에서 대통령 측근의 특별사면을 부탁하는 민원이 들어온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욕 먹을 일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사면 대상자와의 개인적 관계 때문에 ‘사면하면 안된다’는 직언을 못한다. 역대 대통령이 번번이 민심과 동떨어진 임기 말 비리 측근의 특별사면을 단행한 이유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야당의원은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특별사면이란 악수(惡手)를 되풀이하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비리를 저지른 측근들을 포함한 특별사면을 29일 단행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대통령 특사안의 검토를 마쳤다”며 “이제 대통령 결심만 남은 만큼 29일 국무회의에서 특사안을 심의 의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27일 밝혔다.

그 이면엔 대통령 측근들의 특사를 요청하는 주변의 ‘마지막 민원’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대 일부 동문은 이 대통령의 친구이자 고려대 교우회장을 지낸 천 회장의 특사를 하금렬 대통령실장 등에게 집중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 실장도 고려대 동문이다.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서울대 동기인 최 전 방통위원장과 이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 등에 대해서도 대선캠프시절 원로들과 주변인사들로부터 특사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 대통령 앞에선 특사를 대놓고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정서나 퇴임 후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을 생각하면 부정부패에 연루된 측근을 사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자칫 그런 ‘입 바른 소리’가 사면 대상자들에겐 원한으로 남을 수 있어 모두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김영삼 정부 이후 역대 정권에서 매번 임기 말 특사를 단행했다는 점도 청와대엔 핑계가 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지막에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비리 측근을 사면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도 반대하는데…대통령의 고집 왜?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 말 비리 측근 특사는 명분이 없다는 점에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역대 대통령이 임기 말 측근 특사를 단행하면서 ‘국민 통합’을 얘기했지만, 그건 ‘권력 내부통합’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지난 26일 이례적으로 ‘정권 말 대통령 특사’에 반대 입장을 밝힌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과거 (대통령의) 임기 말에 이뤄졌던 특사 관행은 그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며 “특히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고, 그런 사면을 단행하는 일이 없기 바란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비리 측근 특사를 단행하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같은 업적은 묻히고 ‘추한 정권’이란 오명만 남을 것”이라며 “이 대통령의 퇴임 뒤 운신의 폭도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의 임기 말 특사라는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기 위해선 부정부패에 연루된 대통령 측근은 원천적으로 특사에서 배제하는 법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