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의 기원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백과사전들은 1268년 영국 수도사 겸 과학자 로저 베이컨이 발명한 루페(돋보기)가 최초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시력교정용 안경은 13세기 후반 베네치아 유리공들이 발명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토모소 다 모데나가 그린 ‘위고 대주교의 초상화’(1352년)에는 안경 쓴 대주교가 등장한다.

안경이 일반에 널리 퍼진 계기는 1445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이다. 이후 50년간 성경 2000여만권이 보급되면서 이전과 달리 시력이 나쁘면 깨알 같은 글자를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 유래설도 있다. 예부터 확대렌즈로 책을 읽었고, 판관들이 연수정 안경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안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1592년) 전후다. 조선 선조 때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선 임진왜란 휴전협상에 나선 명나라 심유경과 일본 승려 현소가 고령인데도 안경을 끼고 작은 글자도 잘 읽었다고 한다. 최초의 안경 착용자는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부사로 다녀온 김성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안경은 ‘애체’라고 불렀다. 중국에 안경을 전한 네덜란드인의 이름을 딴 용어다.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김홍도(박신양 분)가 쓴 게 애체다.

임금 가운데 정조는 근시가 심해 서책을 볼 때 꼭 안경을 썼고, 그의 아들 순조와 마지막 임금 순종도 안경 없이는 생활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경은 불경한 것으로 여겨져, 임금도 공식석상에선 쓰지 못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훼손하거나 덧붙일 수 없다는 유교 윤리 탓이다.

이런 안경이 요즘엔 한국인의 필수품이다. 전 국민 안경착용률이 53.6%(2011년)에 이르고 심지어 초등학생 10명 중 4명이 안경을 쓸 정도다. ‘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란 옛말이 무색할 정도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쓴 검은 뿔테안경이 화제다. 렌즈에 줄무늬 홈이 있어서다. 클린턴이 뇌진탕 후 물체가 겹쳐보이는 복시(複視)현상 교정용이라고 한다. 이는 19세기 프랑스 물리학자 오귀스탱 장 프레넬이 발명한 ‘프레넬(Fresnel) 렌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등대 감독관이었던 프레넬은 등대 불빛이 멀리 비치는 데서 착안해 이 렌즈를 고안했다. 볼록렌즈 표면을 수십개 홈으로 깎으면 홈마다 빛의 굴절률이 조절돼 빛을 모으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제 안경은 단순히 시력 교정용을 넘어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이 발표한 스마트안경을 쓰고 있으면 날씨 메시지 위치정보 등을 TV로 보는 듯한 효과를 낸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공상 속 안경이 실용화할 날도 머지않았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