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 낙방, 또 낙방. 이 일을 어이할꼬. 안후이성 쉬안청에서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매청(梅淸·1623~1697)이란 선비는 예비시험인 향시는 가볍게 합격했지만 본고사인 회시에서 네 번 연거푸 낙방, 깊은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미관말직을 얻긴 했지만 뜻을 펼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자괴감에 몸서리치던 그는 결국 황산(黃山)에 몸을 숨겼다.

신선이 산다는 그 명산에서 그는 세속과 담을 쌓은 채 불로장생의 신선을 꿈꾼다. 그러나 그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고된 구도자의 길을 감당하기에 그의 몸과 정신은 너무나 나약했다. 결국 그는 모든 욕망의 짐을 내려놓은 채 멍하니 황산을 바라보며 붓을 든다.

그런데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세속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뜨자 신선의 세계가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했다. 안개 피는 기암절벽 위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신선의 거처. 여태껏 누구도 보지 못한 황산의 비경이었다. 그는 그렇게 화선(畵仙)이 됐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