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집은 더욱 곤궁함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정부는 명절이 되면 물가 오름세가 고착되는 계기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명절 물가 점검에 나서는 것이 연례행사가 됐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이 명절 제사상에 오르는 품목의 수요공급상황을 점검하고 물가를 직접 관리하려 드는 것은 국제적 위상에 어울리는 장면이 아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한국의 추석이 다른 점은, ‘미국에선 아무리 가난한 집도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구이를 먹지만 한국에는 추석에 끼니를 거르는 집도 있는 것’이라는 어느 미국 교포의 지적은 다소 과장이 있지만 일리가 있는 관찰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대대적인 세일을 한다. 가난한 가정들도 큰 부담 없이 저녁상을 차리라는 배려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싼 값에 마련하라는 배려까지 포함돼 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무료로 칠면조를 나눠주는 행사가 여러 곳에서 이뤄진다. 한국에서는 명절에 지인끼리 선물이 오가고 양로원, 고아원 등 시설을 방문해 온정을 베푸는 경우는 있지만 대목이라고 해서 물건값이 올라가 가난한 일반가정 전체에는 부담이 오히려 가중된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두 나라의 확연히 다른 풍습을 비교하기 위해 18세기 후반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헌법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가난 구제의 1차적 책임을 국가에 돌리지 않고 교회, 지역사회, 가족 등 기초공동체의 책임으로 규정했다. 남의 도움을 가급적 받지 말도록 하되 불가피하게 남의 도움을 받게 되면 반드시 갚는 것이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정부가 가난 구제에 나서게 되는 경우라도 지방정부에 한정해야지 연방정부까지 나서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작은 정부(limited government)’론을 내세웠다. 복지정책에 관한 연방정부의 역할을 놓고 보수와 진보가 논쟁을 벌이는 핵심이 바로 이 ‘작은 정부’의 역할을 시대에 맞춰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있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로운 방식으로 ‘모두에게 싸게 파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후반의 조선왕조는 유교적 질서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명절대목에 양반님들께 물건을 비싸게 파는 것은 ‘소득재분배’라는 명분과 ‘매출증가’의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민주주의 공화국과 봉건왕조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의식의 차이가 실생활에 반영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해방과 정부수립 이후 60여년이 지나면서 유교적 신분의식이 사라졌지만 ‘죽은 뿌리 위에 살아있는 나뭇가지’처럼 역사적 거래관행이 살아남아 숨쉬고 있는 것이 ‘명절대목’의 가격상승 현상이라고 해석하면 큰 오류가 없을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하는 기적을 연출하며 세계 경제 10강 대열에 서 있는 한국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를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도록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가난구제를 주로 정부에 맡겨 놓아서는 안 되고 국가가 나서기 전에 기초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조금씩 속 깊은 배려를 한다면 복지예산 부담도 줄어들 것이고 우리 사회가 살맛 나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우선 대기업들이 명절 세일에 나서야 한다. 식품,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하는 물품들도 세일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이제 우리의 후진적 관행 중에 시대가 변해 몸에 맞지도 않는 것을 습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합리적인 변경을 시도할 때가 됐다.

첫 번째 과제로 명절에 물건값이 오르고 가난한 가정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통신개념이 혁신되며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공동체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맞춰 관행과 문화를 바꾼다면 뭔가 복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중경 < 美 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