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전격적인 사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총리 지명 이후 연이어 터져나온 두 아들의 병역면제 관련 의혹과 본인 및 가족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청문회를 통해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증폭되면 박 당선인이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연일 의혹이 불거졌지만 사퇴 발표가 나온 29일 오후 7시까지 김 후보자 측의 특이동향은 감지되지 않았다. ‘오후 7시 윤창중 대변인 발표’라는 인수위의 문자메시지가 기자들에게 전해진 오후 6시37분에도 김 후보자가 사퇴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3시 열린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통의동 금융연수원 건물에 도착, ‘의혹에 대한 해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평소처럼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회의 때도 그랬고, 회의가 끝난 뒤에도 특별히 다른 기류를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는 오후 5시30분쯤엔 인수위 미디어지원실 직원들을 통해 삼청동 기자실 브리핑룸에 귤과 떡볶이를 돌리기도 했다.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준비했던 총리실은 30일로 예정된 김 총리 후보자의 해명 관련 브리핑 내용을 가다듬다 갑작스런 사퇴 소식에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각종 의혹에 대해 구체적 물증을 갖고 해명하겠다. 필요하면 2차 해명까지 한다. 언론이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볼 때 김 후보자가 오후 6시가 임박해 사퇴를 최종 결심했고, 박 당선인 측과의 협의를 거쳐 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과 오늘 오후 사전 면담을 하고 사퇴의사를 밝혔다”며 “오후 6시8분께 통의동 집무실에서 나와 만나 발표문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오후 6시 이후 분위기가 사퇴 쪽으로 급반전했다”며 “무엇보다 후보자의 결심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 배경엔 쏟아지는 의혹 제기로 가족들이 입고 있는 상처가 결정적인 고려사항이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언론이 경쟁적으로 의혹을 보도하자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퇴카드를 꺼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윤 대변인을 통한 발표에서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며 언론에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저녁 자택으로 귀가하면서 기자들이 사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 결심을 전해들은 박 당선인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박 당선인이 지난 24일 김 후보자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밝혔던 배경 설명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고육책을 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후보자는 30일 오전 9시 통의동 사무실에 들러 임종룡 총리실장을 비롯한 총리실 청문회 준비단을 불러 그동안 고생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류시훈/이심기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