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혁신적인 여객기가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세계적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최고경영자(CEO)였던 해리 스톤시퍼는 보잉787 드림라이너 개발에 착수하며 이렇게 말했다.

“탁월한 연비와 승차감을 자랑하는 ‘꿈의 여객기’를 만들겠다”고 했다. 출시 후 반응은 뜨거웠다. ‘혁신 기종’이란 기대로 보잉의 역대 모델 중 가장 많은 848대가 팔렸다.

하지만 최근 이 ‘혁신의 산물’이 보잉을 위협하고 있다. 보조 동력을 제공하는 787기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불이 나면서부터 문제가 커졌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보잉787의 운항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 “보잉 사태는 혁신이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혁신이 회사의 도약을 이끌 수도 있지만 잘못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787기의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787기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보잉은 신기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진땀을 뺐다.

기체에 알루미늄 대신 경량 복합재를 사용한 바람에 번개에 취약했다. 방어책으로 철골구조를 추가했다. 기체 외부에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 현상도 생겼다. 보잉은 특별 소재를 사용해 해결에 나서야만 했다.

짐 맥너니 현 보잉 CEO는 또다른 ‘혁신'으로 불렸던 787기에 대해 “역량을 넘어서 무리하게 운항을 시작했다” 며 “너무 야심찬 계획이었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항공기술 혁신은 다른 산업보다 위험이 더 크다. 노트북이 박살나면 데이터가 날아가는 게 전부지만 비행기가 떨어지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여객기의 평균 가격은 약 1억 달러. 아이패드로 치면 20만 대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에어버스 제조사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도 혁신기종으로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EADS의 새 기종 A380의 날개에서 균열이 발생하면서다.

톰 엔더스 EADS CEO는 “첨단기술 기업의 CEO라면 누구나 혁신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심리를 갖고 있을 것” 이라며 “결국 혁신과 안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