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기업 사회적 책임 선도해 온 SK인데…국민 신뢰 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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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회장 법정구속 - 계열사 자금 465억 횡령 혐의 유죄 선고
"경제 영향 감안해 양형 낮추는 것 안돼"
비자금 139억 조성 혐의는 무죄로 판단
"경제 영향 감안해 양형 낮추는 것 안돼"
비자금 139억 조성 혐의는 무죄로 판단
법원이 31일 1심에서 최태원 SK 회장에게 징역 4년에 법정구속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것은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내걸고 있는 최근 정치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과거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재계 총수들에게 경제 기여 공로 등이 고려됐던 이른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같은 유형의 판결이 앞으로는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재판부는 판결 직후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라 판결했다”고 했다.
◆계열사 돈 임의 선물 투자는 횡령
재판부는 SK텔레콤과 SK C&C 등 SK 계열사들이 1000억원대 펀드 결성을 위한 선지급금을 창업투자회사인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송금하게 한 것이 최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결론내렸다. 최 회장이 펀드 출자용 선지급금을 위탁 취지와 달리 선물 투자라는 사적 용도로 사용했으니 횡령죄가 성립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펀드 출자 당시 최 회장의 재무적 상황과 △펀드의 비정상성을 유죄 판단의 구체적 근거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2008년 9~10월께 증권사에 담보로 제공했던 SK(주) 주식 가치가 하락하고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가 겹쳐 자금 조달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1000억원대 펀드 결성이 별다른 내부 검토 없이 최 회장의 개인재산관리 조직인 SK(주) 관재팀의 주도하에 추진된 객관적 정황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펀드에 자금이 송금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선지급 이틀 후나 1주일 이내에 자금이 바로 유출됐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누구보다 합리성과 투명성을 갖춰야 하는데 자금을 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하고 회사를 사유화했다”며 “선경그룹 시절부터 경제개발과 사회적 책임을 선도해온 국민기업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회장이 계열사 임원들에게 추가 인센티브(IB)를 지급했다 일부를 반납받는 방식으로 139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했다.
◆‘양형 기준’ 대로…법정 구속도 예외 안 돼
재판부는 대법원 양형기준 이외의 다른 요인은 감안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판결을 내린 이원범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감경 요소를 감안해 양형기준의 권고 형량 범위인 징역 4~7년 중 최하한 형인 징역 4년을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 횡령·배임죄에 대해 최소 한도로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이 징역 4년이다. 징역 5~8년이 기준이지만 ‘상당 부분 피해가 회복된 경우’ ‘진지한 반성’ 등의 요소를 참작하면 징역 4~7년으로 형을 깎을 수 있다. 재판부는 “유출한 자금을 수개월 내에 개인 재산으로 보전할 의사가 있었던 점, 실제 펀드를 원래 상태로 모두 회복시킨 점 등을 참작했다”며 최 회장에게 유리한 사유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대기업 총수로서의 경제적 기여도나 경영 공백 문제와 같은 요인은 이번에는 참작 대상이 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SK의 위상을 생각할 때 유죄 판결만으로도 계열사들의 충격이 지대하고 이 판결로 국민 경제에 미칠 영향도 작지 않다”면서도 “대기업들의 무리한 영역 확장과 과도한 이윤 추구 경영으로 여론의 비판 대상이 됐다는 것이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해선 안 되듯 피고인의 경제적 영향력이 경감 사유가 되는 데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법정구속에 대해선 “실형 선고 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하도록 돼 있는데 피고인에 대해 예외를 인정할 사정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범죄 행위가 사면 복권된 후 불과 3개월 후에 이뤄졌다는 점도 고려됐다.
◆부회장 동생은 ‘무죄’
재판부는 최재원 부회장에 관해서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본인이 회삿돈 전용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 업무상 횡령죄를 구성하는 불법 영득 의사(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빼앗으려는 것)를 발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횡령 공모에 대한 무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 밖에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횡령 등 주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보석 상태였던 김 전 대표는 선고공판 직후 재수감됐다.
정소람/윤정현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