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간 끌어온 삼성가의 4조 원대 상속소송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완승으로 끝났다.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남긴 재산을 둘러싸고 진행된 이 회장과 친형 이맹희 씨의 법정다툼은 승패 여부와 관련없이 삼성과 CJ 양측에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선고가 예정된 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법정 앞에는 1시간 전부터 취재진과 삼성, CJ측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200석이 넘는 대규모의 법정이었지만 앉을 자리가 없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날 서창원 담당판사는 선고에 앞서 "선대회장(창업주)의 유지는 상속과 관련된 부분뿐 아니라 일가가 화합해서 화목하게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뜻도 있을 것" 이라며 "결과를 떠나 앞으로 양측 일가가 화합해서 함께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서 판사는 이어 이맹희 씨가 이 회장과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소송에서 일부 청구는 기각하고 일부는 각하했다. 재판부는 일부 청구에 대해 제척기간(법률적 권리 행사 기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소송을 각하했다. 나머지 청구에 대해선 해당 주식을 상속 주식으로 보기 어려워서 기각했다고 밝혔다.

소송을 제기한 이맹희 씨 측의 청구는 사실상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회장 입장에선 최악의 경우 삼성 지배구도를 흔들 수도 있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됐다.

선고가 내려진 뒤 이 회장 측 변론을 맡은 윤재윤 변호사는 "사실관계나 법리적으로나 합당한 결론" 이라며 "이 회장이 재판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부분은 없었고, 보통의 재판처럼 담담하게 임했다"고 밝혔다.

반면 이맹희 씨 측 차동언 변호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 라며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재판부의 입장은 존중한다" 면서도 "의뢰인과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항소를 시사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번 소송의 결과를 떠나서 형제간, 집안 간 상속재산을 둘러싼 다툼 자체가 양 측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뿐이라는 분석이다. 소송과정에서 감정을 참지못한 이 회장은 "재산을 한푼도 내줄 수 없다" "그 양반(이맹희 씨)은 집안에서 이미 퇴출당한 사람이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어느 쪽이 이겼든 씁쓸한 일" 이라며 "재벌가의 재산싸움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은 곱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역시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소송 진행과정에서는 최대한 침묵을 유지했다.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나설 일이 없는데다 여론의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 이날 선고 결과에 대해서도 삼성 측은 "특별히 언급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지난 달 11일 하와이로 출국한 이 회장은 현재 일본에 머물며 지인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0일 구정 명절을 전후로 귀국할 예정이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