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다툼 1년, 판결은 단 8분…"이맹희 씨, 소송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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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 상속 소송' 이건희 회장, 완승
재계 "무리한 소송"…원고측 "항소 검토"
재계 "무리한 소송"…원고측 "항소 검토"
삼성가의 4조원대 상속재산 분쟁 1심이 8분 만에 이건희 삼성 회장 측의 완승으로 끝났다. 1일 재판부는 작고한 이병철 회장이 남긴 상속재산과 이맹희 씨 등이 청구한 이 회장 보유 주식은 같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일부 상속재산으로 인정된 부분은 ‘제척기간(상속 유산에 대해 법률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이 이미 지나 소송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됐다.
○상속재산과 이 회장 소유주식은 달라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상속재산과 이맹희 씨 측이 청구한 이 회장 소유의 차명 주식이 동일한 것인지 여부와 △상속회복을 청구할 시간적 제약(제척기간)이 충족됐느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실상 두 사안에 대해 모두 이 회장 손을 들어줬다.
우선 상속재산과 이 회장 보유 차명 주식이 같은지에 대해 재판부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무상 증자를 통해 새로 배정된 주식의 경우 신주인수대금이 모두 상속재산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차명주식이 상속재산의 매각 등으로 변형된 경우를 일컫는 ‘대상재산(代償財産)’에 해당돼 동일성이 유지된다는 이맹희 씨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상재산도 상속재산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독일 민법과 달리 우리 민법은 대상재산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 소유의 삼성생명 주식 50만주와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60만5000주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임을 인정했다. 이 회장 측은 1989년 공동 상속인들 사이에 삼성생명·삼성전자 차명주식과 관련된 합의가 있었다며 상속재산분할협의서를 제시했지만 재판부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10년 제척기간이 문제였다. 현행법상 상속권 침해가 발생한 경우 제척기간은 ‘침해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어서 그 기간 안에 상속권 회복을 요구해야 한다. 이맹희 씨 측은 이 회장이 차명주식을 실명 전환한 2008년에야 상속권 침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제척기간 10년이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대신 1987년 상속 당시 이미 상속권 침해가 발생해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1년간 삼성 발목 잡은 장애 일단 해소
삼성 측은 판결에 대해 ‘당연한 결과’라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법정에는 김상균 사장 등 삼성 법무실 임직원 전원이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삼성 관계자는 “25년 전에 상속이 다 끝난 일을 법무법인 화우가 무리하게 소송으로 부추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원고 측을 대리한 화우 측은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판결문을 받고 내용을 검토하는 대로 즉각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가의 유산 분쟁이 사실상 정리되면서 삼성그룹은 경영에만 몰두하게 됐으나 원고 측이 항소해 2라운드가 펼쳐질 가능성은 있다. 다만 1심에서 원고 측이 대규모 소송인단을 꾸려 전력을 다했음을 감안하면 항소심에서 결과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소람/김현석 기자 ram@hankyung.com
■ 제척기간
법률이 정한 특정 권리의 존속 기간이다. 제척기간이 만료되면 그 권리는 당연히 소멸한다. 소멸시효와 비슷하지만 기간이 종료했음을 당사자가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제척기간은 당연히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법원은 이를 기초로 재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조문에 기한을 언급하면서 소멸시효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척기간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