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中企대출 경쟁 이어 '개인고객 뺏기'
대기업에 다니는 김선경 씨(43)는 은행 1곳과 저축은행 2곳, 캐피털 2곳 등 모두 7개 금융회사에서 7000만원가량의 빚을 지고 있었다. 김씨는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추가 대출이 필요했지만 대출 한도가 꽉차 어려움을 겪던 중 한 대출모집인으로부터 ‘통(統)대환’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한 은행에서 새로 돈을 빌려 모든 금융권의 부채를 한꺼번에 갚고, 대출을 한 군데로 합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이 모집인의 소개로 지난달 다른 은행에서 연 8.5% 금리에 7000만원을 통대환 방식으로 대출받았다. 5000만원만 유가증권 담보대출이고 나머지는 일반 신용대출이다. 기존에 대출받았던 은행 및 저축은행 등의 빚을 모두 갚고 추가 대출도 받을 수 있었다.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을 정리한 덕에 월 이자 부담액도 100만원가량 줄었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들어 각 은행들이 대출 고객을 경쟁 은행에서 빼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과 부동산 거래 침체 등으로 대출 수요 감소에 위기감을 느낀 은행들이 연초부터 ‘대환(갈아타기) 대출’ 영업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대환대출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타거나 추가 대출을 받기 힘든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최근 다중채무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통대환’은 대환대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각 은행이 대환대출 영업 목표로 삼고 있는 고객은 공무원이나 전문직 또는 대기업에 다니는 ‘우량 직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연봉이 3000만원을 넘으면서 연체 기록이 없고, 신용등급이 6등급 이상이어야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규 대출 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부실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영업 목표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환대출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신용대출 시장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대환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은행은 1월 말 신용대출 잔액이 13조여원으로 1년 새 26%(2조7000여억원) 정도 늘었다. 지난해 제자리걸음을 한 우리은행을 바짝 뒤쫓는 모습이다. 반면 국민은행은 같은 기간 신용대출이 1조6000여억원 줄었다.

일부 은행들은 고객을 빼오기 위해 중도상환수수료를 대신 내줄 정도로 적극적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환대출을 유치한 대출모집인에게는 기존 수수료에다 1% 정도를 더 얹어주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은행들이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높은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 경쟁을 벌이면서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들은 갈수록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미에 맞는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ㆍ저신용층을 외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