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케이(産經) 편집위원 다무라 히데오의 엊그제 칼럼은 ‘반(反)아베노믹스를 참(斬)하라’라는 실로 과격한 제목을 달았다. 최근 4회에 걸쳐 ‘아베정권 경제정책의 과제’를 연재한 닛케이(일본경제신문)를 참하라는 것이었다. 일본 국채의 폭락 가능성과 인플레 부작용을 경고한 닛케이의 아베 비판을 반박한 것이었다. 오늘 정규재 칼럼이 이 문제에 한두 마디 거들게 된 것을 다무라 씨는 이해해 달라. 아베 경제학의 본질이 근린궁핍화인 만큼 한국 언론에 발언권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잘 알고 있듯이 일본의 국가부채는 2012년 말 현재 14조6000억달러다. 미국 국가부채 16조4000억달러에 육박한다. 일본 GDP는 미국의 절반이다. 부채의 나라 미국에 비해서도 과도하다. GDP 대비로는 230%다. 부도난 그리스가 174.7%, 이탈리아 126%, 포르투갈 119%, 프랑스 90%, 스페인 85.4%이다. 다른 나라 같으면 채무불이행이 벌써 몇 번이라도 났을 테다.

일본이 거대한 부채를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많다. 우선 국채 대부분을 일본인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은 국채를 더 사들여야 할 정도로 예금이 많다. 엔화가 ‘그래도 안전자산’이라는 오래된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업투자 등 자금수요가 없기 때문에 투자할 곳이라고는 국채밖에 없다는 주장이 차라리 솔직하다. 일본인의 애국심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다. 다무라 씨는 바로 이 애국심에 근거해 국채투매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인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인종차별적 주장일 뿐이다. 일본인은 결코 별종이 아니다. 안전자산이어서가 아니라 수익자산이기 때문에 국채를 산다는 것이 진실 아닐까.

일본 국채 수익률은 1월 말 현재 연0.704%다. 10년 동안을 곤두박질친 뒤끝이다. 그러나 이것도 우습게 봐서는 곤란하다. 물가가 마이너스 1%라면 국채투자 수익률은 1.7%다. 그럭저럭 견딜 만한 수익률이다. 장기 디플레이션이야말로 부채를 견디게 해준 숨은 원인이었던 거다. 여기에 엔화 강세까지 한몫을 했다. 강세통화를 두고 굳이 해외에 나갈 이유도 없었다. 일본 국채의 외국인 보유비중은 6.3%다. 외국인이 사지 않아서가 아니라 일본이 해외에 팔 이유가 없다. 무역수지는 언제나 흑자였다. 국내에서 돌려막아도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새로운 조건에서도 이런 조합이 가능할까. 어제 한경 인터뷰(1면)에서 월가의 리카즈 씨가 언급한 통화전쟁론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통화완화책은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수입물가를 올려 인플레를 유발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렇다. 아베의 도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동전의 뒷면을 잘 봐야 한다. 버냉키나 아베의 도박이 본질은 다를 것이 없다. 버냉키는 물가 2.5% 조건 하에서 실업률이 6.5%에 도달할 때까지 무제한 돈을 풀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라면 달러는 이미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야 마땅하지만 당장 대체할 다른 통화가 없다는 것이 버냉키의 배짱이다.

물가가 2.0%로 올라설 때까지 돈을 푼다는 것이 지금 아베 총리의 목표다. 과도한 열정은 종종 비극의 원인이 된다. 이제 일본 물가가 2%로 올라서면 국채 수익률은 4%로 올라서야 한다. 지금도 일본 정부 예산의 25%가 국채 이자 지급액이다. 이 것이 네 배가 된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재앙은 경사면을 따라 구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엔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다. 발상은 같지만 달러와 엔의 결과는 다르다. 돈 풀어 경제 살린다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다. 아니라면 아베의 속마음은 중국과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도 모른다. 1930년대 서구에서처럼 말이다. 한국인으로서는 그 무대가 한반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북한은 계속 핵(核) 장난을 하고 싶어한다.

치열한 경쟁이 아닌 그 어떤 수단도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다. 노동시장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기술개발에 더 한층 박차를 가하는 것 외에 장기적으로 경제를 살릴 그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또 그게 진짜 경제학이다. 물론 다무라 씨처럼 착각하는 한국인들도 많다. 일본에서는 그것을 아베노믹스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포퓰리즘 혹은 경제민주화라고 부를 뿐이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