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교가 몇 해 전 설문조사를 한 결과 945명 중 45%가 부정행위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적발됐다는 학생은 7명에 불과했다. 그 학교에선 ‘시험부정행위를 하지 맙시다’라는 캠페인까지 벌였다. 학창시절 커닝을 해보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객관식 문제 위주의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의 시험지를 훔쳐보았고, 주관식 문제가 많던 대학 때는 커닝페이퍼를 주로 활용했다. 거무튀튀한 책상 위에 깨알같이 예상답안을 적어 감독관이 얼핏 봐선 티가 나지 않는 수법을 쓰기도 했다.

단숨에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려는 게 아니라 과락이나 면해 보려는 ‘생존형’이 많았다. 안면몰수한 채 베끼지만 않는다면 들켜도 주의를 받는 선에서 끝났다. 분위기가 그래서인지 ‘커닝의 도(道)’라는 유머까지 생겼다. 들킨 친구를 진심으로 안쓰러워하는 인(仁), 누가 보여줬는지를 끝까지 밝히지 않는 의(義), 답을 보여준 친구보다 점수가 높아선 안된다는 예(禮), 잘 들키지 않는 자리와 선생님의 습성을 미리 간파하는 지(智), 답이 아무리 이상해도 의심 없이 받아 쓰는 신(信)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 과거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빈발했다. 책이나 문서를 시험장에 갖고 들어가면 일정기간 응시 자격을 박탈했고, 답안지를 훔쳐보다 걸리면 곤장 100대를 치는 등 가혹하게 처벌했으나 근절되지 않았다. 수법도 다양했다. 다른 사람의 답을 훔쳐보는 고반(顧盼)과 페이퍼를 붓대 속에 숨겼다가 꺼내 보는 협서(挾書)가 가장 흔한 유형이었다. 시험장과 연결되도록 미리 묻어놓은 긴 대나무통에 문제가 적힌 종이를 끈에 매달아 넣은 다음 밖에서 답을 작성해 들여보내려다 들켰다는 기록도 실록에 전한다. 어떻든 시험에는 늘 부정행위가 따라다녔다.

심지어 공부벌레라는 하버드대 학생들조차 커닝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작년 5월 집단 시험부정으로 ‘명문’의 체면을 구겼던 하버드대가 관련 학생 60여명에 대해 2~4학기 유기정학 처벌을 내리기로 했단다. 당시 의회입문 수업을 듣던 학생 125명이 재택시험에서 이메일 휴대전화 등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답안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었다.

우리의 커닝도 생존형보다는 ‘범죄형’이 늘어나는 추세다. 카카오톡을 통해 토익(TOEIC) 텝스(TEPS) 등 공인 영어시험 답안을 밖에서 전송하고, 학원강사와 선배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하는 등 수법이 갈수록 영악해지고 있다. 커닝은 노력 없이 성과를 내려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도둑질이다. 아무리 하찮은 커닝이라도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돼 있다. ‘학창시절 아련한 추억’ 등의 커닝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