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주채무계열(대기업집단) 선정기준을 바꿔 더 많은 기업을 여기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의 0.1%가 넘어야 주채무계열이 됐지만 이를 0.05~0.075%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 신용공여액에 합산하지 않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액을 50%까지는 합산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여신관리를 더 엄격하게 해 제2의 ‘웅진 사태’를 막겠다는 것이다. 회사채를 발행해 은행대출을 갚는 식으로 주채무계열에서 빠져나가는 일부 기업들의 관행을 막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기업 부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만약에 있을지 모를 시장 충격을 줄여보겠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채나 CP 발행을 은행여신과 마찬가지로 간주하겠다는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 회사채 발행은 자금 제공자인 투자자와 자금 수요자인 기업 간에 시장에서 체결한 계약이다. 회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신용을 시장이 인정했다는 뜻도 된다. 더욱이 회사채는 급박한 자금수요 없이도 재무전략상 필요에 의해 발행하기도 하는 만큼 이를 무조건 여신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어떤 근거로 50%까지만 여신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인지도 애매하다. 과도하게 은행 중심적인 생각이다.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도 문제가 많다. 사실 금융권 총 신용공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덩치가 큰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양호하더라도 주채무계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는커녕 더욱 채무를 부풀리는 형식기준을 만들겠다는 것은 수긍하기 곤란하다. 이는 비올 때 우산을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산 공장을 폐쇄하는 식의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유사시에는 더 큰 금융 충격을 만들어 낼 위험성이 크다.

그렇지 않아도 시중에는 기업부실 루머가 횡행하는 상황이다. 상처를 드러내는 것과 상처부위를 덧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지난 연말에는 가계부채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기업부채 문제로 또 평지풍파를 일으킬 작정인가. 정권 교체기에 나오는 무리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