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점장 "20년간 옷 판 현장 경험이 가장 큰 무기"
밤새 폭설이 내린 지난 4일. 김희경 롯데마트 서울역점 점장(50·사진)은 평소처럼 일찍 출근해 눈을 쓸고 있었다. 손바닥이 얼얼해질 때쯤 휴대폰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이사대우로 승진하셨습니다.” ‘女商’(신경여자실업고)을 졸업하고 1980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지 33년, 롯데그룹 고졸 여성 사원 출신으로는 처음 임원에 오른 것이다.

김 이사는 롯데백화점에서 20년 동안 신사의류 판매를 담당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꼼꼼한 장부 정리로 눈도장을 받았다. 2000년 롯데마트로 자리를 옮겨 패션팀 언더웨어 바이어가 됐을 때 그의 현장 경험이 빛을 발했다. 그는 “당시 대형마트 주 고객층은 30~40대 주부였다”며 “화려한 고급 여성 속옷을 출시했는데 대박이 났다”고 회상했다. 이후 김 이사는 승승장구했다. 2005년 롯데마트 강변점을 맡으면서 국내 대형마트 1호 여성 점장이 됐다.

2011년에는 롯데마트에서 두 번째로 큰 점포인 서울역점을 맡아 연 매출 2000억원대 매장으로 성장시켰다. 김 이사는 “외국인 고객이 오면 불편하지 않도록 상품 설명을 외국어로 표기하는 등 신경 썼다”며 “일본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업용 점퍼를 즐겨 입는다. 일손이 부족할 땐 계산대에서 ‘헬퍼’ 역할도 맡는다. 얼핏 봐선 영락없는 판매직 아주머니다. 그는 “일부 고객이 가끔 ‘아줌마’라고 부르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도 있지만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웃었다. 미혼인 그는 ‘누나처럼 편안한 리더십’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았다. 직원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프로야구 시즌에는 직원들과 롯데 자이언츠 응원을 간다. 전 롯데 선수 이대호의 팬이다.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계속 발휘해 달라’는 축하 인사가 많이 온다”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직원 한 명 한 명을 바라보며 소통하려고 한다”고 했다.

김 이사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최선을 다했다”며 “너무 멀리 보기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요즘 여자 사원들을 보면 못하는 걸 불평하기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일한다”며 “앞으로 그룹 내 여성 임원이 더 많이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