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고합니다. 훈련병 김형태 외 00명은 1989년 10월 훈련소 입소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경기도 고양시 사단 신병훈련장.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연병장에 메아리쳤다. 합기도 2단에 유도로 단련된 몸, 키 184㎝의 당당한 체구에 목소리까지 컸던 나는 입대 후 훈련병 수백 명을 대표해 사단장 앞에서 입소신고를 했다. 성균관대 금속공학과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머리를 빡빡 깎은 채 훈련병으로 입대한 것이다.

그러나 입소 첫날부터 실수의 연속이었다. 사단장의 모자와 어깨에는 모두 6개의 별이 달려 있었다. 별을 보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청을 최대한 키운다는 게 그만 내 침이 사단장 얼굴 정면에 튄 것이다.

“자네 왜 침이 튀나.” 사단장은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아내며 약간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그 말이 “자네 집이 어딘가”를 물어보는 것으로 들렸다. “예.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00번지에 삽니다.”

단상 곳곳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6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30사단 통신대대 수송대에 배치됐다. 경기도 화전이다. 신이 났다. ‘수송대면 차만 타고 다니면 되고 행군은 안 해도 되는 게 아닌가.’

훈련병 시절 100㎞ 행군을 한 경험이 있어 장거리 행군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얼마 뒤 훈련이 시작됐다. 통신대대 수송대는 각종 통신장비를 싣고 고지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야 원활한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꼭대기 부근에 차를 세운 뒤 장비를 하차시키자 하사관이 우리를 집합시켰다. 커다란 트럭이 오더니 우리를 전부 태우고 부대로 원위치시켰다. 그곳에서 다시 걸어서 산꼭대기까지 행군해서 오라는 게 아닌가. ‘수송대는 보병에 비해 훈련이 적으니 틈나는 대로 별도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송대는 다른 부대에 비해 군기가 무척 셌다. 방심은 사고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사시에 트럭이 움직이지 못하면 보급이 중단되고 그러면 작전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더구나 부대 지휘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장비를 운반하는 수송대는 군기가 더 엄했다. 유무선 장비와 케이블을 2.5t 트럭에 싣고 운반하는 게 내 임무였다. 당시 군에서는 그 트럭을 ‘제무시’라고 불렀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서 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트럭인 ‘GMC’를 한국어로 쉽게 ‘제무시’라고 부른 것이다.

아침마다 차량 점검이 있었고 이상이 발견되면 바로 조치해야 했다. 단순한 운전병이 아니라 야전에서는 긴급정비도 할줄 알아야 했다. 제때 조치하지 못하면 일렬 횡대로 세워져 있는 트럭 밑으로 들어가 반대쪽으로 기어나와야 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표어대로 늘 완벽한 상태로 차량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군생활 동안 차량 부품 수천 개의 이름과 기능을 전부 알게 됐다. 차량은 기계·금속·전기·전자분야의 집합체이자 대표적인 메카트로닉스 제품이다.

이는 사회생활에서 큰 도움이 됐다. 지금 창업해 운영하고 있는 아프로R&D는 자동차 휴대폰 가전제품 등의 이상 유무를 파악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업이다. 대기업들이 주고객이다. 제대 후 모교에서 금속공학 박사까지 받았지만 실무지식은 군생활 중 익힌 게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사업에서 완벽을 기하는 정신 역시 군생활 때 터득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