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이 사람 아니면 더 이상 반도체사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삼성이 1974년 인수한 한국반도체가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1978년 이 사람을 구원투수로 기용하면서 한 말이다. 1983년 2월 ‘도쿄선언’을 하기 전 반도체 전담팀도 이 사람을 중심으로 꾸렸다.

1978~1998년 삼성 반도체사업을 이끈 김광호 전 삼성전관(현 삼성SDI) 회장 얘기다. 김 전 회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쿄선언은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서 반도체 독립을 시작한다는 선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아무도 메모리 반도체사업을 하지 않으려 하고 정부조차 ‘가망이 없다’고 말리던 때였다”며 “도쿄선언 때문에 삼성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1위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사업이 적자에 허덕일 때도 이병철 회장은 ‘손익은 내가 책임질 테니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만 맡아달라’며 자신감을 북돋아줬고 그것이 반도체사업에 큰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64K D램 개발을 꼽았다. 도쿄선언 이후 연구팀을 꾸린 지 6개월 만인 1983년 12월의 일이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하자 삼성 반도체가 처음으로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발표 이후 재고로 쌓여 있던 삼성 전화기가 다 팔릴 정도로 파급효과가 엄청났다”며 “사실 석 달 전인 9월에 개발을 끝냈지만 견제가 들어올 수 있으니 천천히 하자고 해서 발표를 늦췄다”고 소개했다.

삼성반도체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김 전 회장은 “그동안 한국인의 근면성과 손재주로 메모리 반도체에서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시장 규모가 더 큰 시스템 반도체에서 성장하려면 기초 기술과 선행 기술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모리에선 해외기술을 가져와 생산라인을 조금만 바꾸면 됐지만 시스템반도체에선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김 전 회장은 1964년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방송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69년 삼성전자 TV생산부장을 하다 1978년 삼성반도체통신으로 옮겨 1992년 사장에 올랐다. 1994년 삼성전자 사장으로 옮긴 뒤 1996년 삼성전자 부회장, 1999년에 삼성전관 회장으로 승진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