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스티브 잡스 전 CEO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2011년 8월 CEO 자리를 물려받은 이래 지난 18개월 동안 큰 실수 없이 신제품을 출시하고 분기마다 좋은 실적도 기록했다. 그러나 애플이 제품과 실적만으로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시대는 끝난 것일까. 적어도 악명 높은 헤지펀드 매니저 데이비드 아인혼 그린라이트캐피털 회장(사진)은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 1371억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배당 등을 통해 주주들에게 환원하라고 쿡을 압박하고 나선 것.

아인혼은 7일(현지시간) 애플을 상대로 뉴욕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애플이 우선주 발행을 어렵게 만들어 현금 배당을 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발단은 애플이 오는 27일 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 관련 규정을 바꾸려는 데서 비롯됐다. 지금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주주 동의를 얻어야 우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변경할 계획이다. 우선주란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에 비해 높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이다.

아인혼은 이날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총에서 이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애플은 주당 145달러의 현금을 깔고 앉아 있으며 이는 당신들(주주들)의 돈”이라고 강조했다. 그린라이트캐피털은 애플 주식 6억1000만달러어치(약 0.12%)를 보유하고 있다.

아인혼은 특히 “애플이 이 안건을 다른 두 개 안건에 붙여 은근슬쩍 처리하려 한다”며 “이는 안건별로 표결에 붙여야 한다고 규정한 증권거래위원회(SEC) 규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법원에 제소했다.

애플이 막대한 현금을 주주들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은 잡스 시절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나 잡스는 “미래 투자를 위해 현금을 남겨놔야 한다”며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혁신적 제품과 매출 성장에 힘입어 주가가 빠르게 올랐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요구도 그다지 거세지 않았다.

잡스 사후(死後)엔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5가 전 모델들에 비해 혁신성이 떨어지는 데다 삼성 스마트폰에 밀려 매출 성장세도 둔화된 탓이다. 지난해 9월 주당 701.1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애플 주가는 7일 468.22달러로 떨어졌다.

애플은 1995년 이후 처음 지난해 3월 3년간 450억달러 규모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주주들을 만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아인혼은 지난해 9월 애플에 영구우선주를 발행, 정기적인 배당을 실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애플은 당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금을 환원하라는 주주들의 압력이 높아진 건 애플 주식이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이날 성명에서 “경영진과 이사회는 더 많은 현금을 주주들에게 환원하는 방안을 활발하게 토의하고 있다”며 “(영구우선주를 발행하라는) 아인혼의 제안도 포함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 영구우선주

perpetual preferred stock. 우선주란 의결권이 없는 대신 보통주에 비해 높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을 말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기존 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면서 자금 조달을 하고, 투자자들은 안정적으로 배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선주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사가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상환우선주와 투자자들이 원할 경우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우선주, 그리고 상환 의무가 없는 영구우선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