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2월27일 파리 중심가에서는 프랑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에게 바치는 행사였다.

행렬은 작가의 자택이 있는 에로 거리에서 시작, 샹젤리제를 거쳐 파리 중심가를 순회했다. 행렬이 위고의 집을 통과하는 데는 장장 6시간이 걸렸다. 위고는 창가에 앉아 벅찬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렬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뿌옇게 흐려진 눈앞으로 두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인 아델 푸셰(1803~1868)와 그의 오랜 정부로 사실상의 반려자인 쥘리엣 드루에(1806~1883)였다.

푸셰는 13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드루에는 법적인 배우자가 아닌 데다 거동이 불편해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다. 푸셰는 어린 시절 위고의 소꿉친구였다. 그는 푸셰와 결혼할 생각이었지만 어머니의 거센 반대로 비밀리에 약혼했다가 어머니가 타계하고 나서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그렇게 소싯적부터 함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꿔온 푸셰와의 관계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문학 활동과 정치 활동에 전념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않은 데다 끊이지 않은 외도로 푸셰를 고통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결국 푸셰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남편의 친구인 생트뵈브와 맞바람을 피우게 되고 둘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위고는 여자문제에 관한 한 아들의 애인을 가로챌 정도로 걸신들린 사람이었다. 그는 선천적으로 한 여자에게 만족할 수 없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휘어잡은 유일한 여인은 드루에라는 미모의 여배우였다.

그가 드루에를 처음 만난 것은 1833년 연기자들을 위해 마련된 한 강연에서였다. 고아 출신으로 조각가와의 사이에 사생아까지 둔 드루에였지만 빼어난 외모에 글재주까지 겸비, 단숨에 위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달이 난 위고는 드루에에게 거처를 마련해주고 그를 자신의 개인비서이자 여행의 동반자로 삼았다.

위고는 그 후에도 틈만 나면 다른 여인 주변을 기웃거렸지만 어김없이 드루에에게로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1883년 드루에가 세상을 뜰 때까지 장장 50여년간이나 지속된다. 결혼만 안 했지 드루에는 사실상의 부인이나 다름없었다.

위고가 드루에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드루에의 헌신적인 사랑때문이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집권, 왕정을 부활시키자 공화주의자인 위고는 망명길에 올랐다. 그런 그를 따라 벨기에로, 영국으로 그림자처럼 따라가 궁지에 몰린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이는 부인 푸셰가 아닌 드루에였다. 20여년에 걸친 망명생활을 버텨내게 한 것은 드루에의 헌신적인 사랑의 힘이었던 것이다.

위고가 이 고난의 시기에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도 드루에의 내조 속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고는 그런 드루에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그를 작품 속에서 사생아 코제트를 양육하기 위해 몸을 파는 가련한 여인 팡틴의 모델로 삼았다. 또한 자신과 드루에의 첫 만남을 공화파 청년 마리우스와 팡틴의 딸 코제트의 숙명적 만남에 비유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운명의 여인을 작품 속에서 영원한 존재로 승화시켰다.

위고가 드루에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빼어난 문학적 재능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하는 꽃이었다. 드루에는 위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눈을 감는 날까지 이 위대한 문인에게 쉴 새 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가 남긴 편지는 남아 있는 것만도 2만통이 넘는다. 50여년 동안 위고에게 연평균 400통 이상의 편지를 썼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그 글이 지닌 문학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문학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그러니 어느 여인도 드루에를 대신하기는 어려웠다. 잠시 다른 여인에게 매혹됐다가도 위고는 늘 자신에게 감미로운 언설을 쏟아내는 이 향기로운 여인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드루에는 영원한 코제트였던 것이다.

드루에는 어째서 평생 위고만 바라봤던 것일까. 드루에는 자신을 불행한 삶에서 건져준 위고를 평생의 은인이자 연인으로 삼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아마도 차가운 고아원에서 홀로 자라며 가슴속에 쟁여뒀던 응어리를 묵묵히 받아준 위고에게서 연인과 아버지의 부성을 발견했으리라. 불행에 단련된 그는 위고가 수없이 바람을 피울 때도 ‘레미제라블’ 속의 팡틴이 남편(코제트의 생부)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처럼 확신을 갖고 기다렸던 것이다.

세상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드루에는 한 남자의 정부로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여인이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불멸의 명작을 선사한 마음의 은인이다. 드루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과연 팡틴과 코제트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레미제라블’을 보고 흘리는 당신의 눈물과 감동 속에 그 답이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