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더 올라가셔서, 예, 거기서 가능해요? 힘들어요 선생님?”(최용훈)

“하나 내려가야 되겠는 데.(상체를 뒤로 젖혀 무대 한복판에 있는 정승길과 서은경을 바라보며)걔, 임신했대. ”(윤소정)

지난 7일 저녁 서울 명동예술극장. 오는 15일부터 이곳에서 공연되는 연극 ‘에이미’의 무대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동안 대학로 연습장에서 연습하다가 실제 공연장으로 옮겨 손발을 맞추는 첫날이다. 그런 만큼 이날 연습은 1막부터 4막까지 극을 진행하면서 배우들의 정확한 동선과 위치를 잡는 것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영국 극작가 데이비드 해어가 쓴 ‘에이미’는 2010년 2월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최용훈 연출, 윤소정 서은경 이호재 백수련 출연으로 국내 초연됐다. 당시 ‘탄탄한 극본과 탁월한 원작 해석 및 밀도높은 연출, 배우들의 열연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연극의 정석’이란 호평을 받았고, 연일 매진을 기록할 만큼 관객들의 호응도 높았다. 연출가 최용훈 씨는 김상열연극상을 받았고, 주인공 에스메로 열연한 윤소정씨는 히서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초연 3년만에 명동예술극장의 우수 연극 초청 공연으로 ‘에이미’팀이 다시 뭉쳤다. 에스메의 사위 도미니크 역만 김영민에서 정승길로 바뀌었을 뿐 초연 멤버 그대로다. 초연과 가장 큰 차이점은 극장이다. 200여석의 소극장에서 580여석의 중극장으로 바뀌었고, 무대도 훨씬 커졌다. 최씨는 “관객들이 전작과는 달리 무대와 거리를 두게 되니 배우들의 감성적인 면에만 몰입하기 보다는 한발짝 떨어져 연극이 하고 싶은 얘기를 좀더 생각하면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에이미는 뉴미디어시대의 연극와 예술의 의미, 세대간 단절 문제 등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화두를 던져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배우들은 중간중간 동선과 소품 위치 등을 세세하게 짚는 연출가의 지적에 흐름이 끊겼음에도 집중력있게 연기에 몰입했다. 극은 뉴미디어를 혐오하는 유명 연극 배우 에스메와 그의 딸 에이미, 대중지상주의자인 사위 도미니크의 갈등을 축으로 진행된다.

1막에서 에스메와 도미니크가 처음 만나고 에이미의 임신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서히 예열되던 무대는 2막에서 연극과 예술, 삶에 대해 판이한 가치관을 가진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폭발한다. 나직하면서도 강한 톤으로 ‘연극의 종말’을 얘기하는 정승길 씨의 냉소적인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3막부터는 윤 씨의 무대였다. 파산에 따른 경제적인 어려움에 그토록 싫어하던 TV드라마에 출연하고 돌아온 에스메의 넋두리, 고상하고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서 도피하는 여배우의 모습, 그런 엄마에 실망해 뒤돌아서는 에이미를 붙잡는 장면 등에서 50년 배우 인생의 진면목이 엿보였다.

올해 69세인 윤씨는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의 에스메를 연기한다. 그는 세시간 가까이 진행된 연습이 끝났어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연습하는 것만 봐도 가슴이 뭉클했다”는 인사에 이렇게 답했다. “오늘은 동선을 잡느라고 제대로 하지도 못했는데. 진짜 완성된 무대를 봐요. 정말 감동적일테니.”

공연은 내달 10일까지 이어진다.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공휴일 오후 3시. 2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