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2월11일 낮 12시30분


중견 기업의 기업어음(CP) 만기 ‘공포’가 커지고 있다. 올 들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회사채 시장과 달리 CP 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CP란 기업이 상거래와 관계없이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기신용으로 발행하는 주로 만기 1년 미만의 융통어음이다.

건설 해운 조선 등 위험이 높은 업종에 속한 중견 기업은 만기가 돌아온 CP를 갚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거나 담보를 걸고 금융권 차입에 나서고 있다.

한 기업의 자금 실무자는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건설사는 4%포인트, 해운·조선사는 2~3%포인트를 더 얹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자금 돌려 막기’가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올 1분기까지 CP 시장 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벼랑 끝에 몰리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연내 비우량 CP 만기 46조원 웃돌아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사모 발행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포함한 CP 발행 잔액은 138조7000억원이다. 이 중 약 72%인 99조5000억원이 연내 만기가 돌아온다. 올해 회사채 만기 물량 44조원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CP를 발행하는 총 243개 기업 중 47%(113개)가 A2급 이하의 신용등급을 갖고 있다. CP 신용등급이 A2급 이하면 회사채 신용등급으로는 A급 이하에 해당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약 46조7000억원의 비우량(A2급 이하) CP가 연내 상환되거나 차환(롤오버)돼야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A급 이하 비우량 회사채(24조원)의 두 배에 달한다.


하지만 원활한 CP 차환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투자자들은 보수적으로 CP에 투자하고 있다. 회사채 신용등급으로 AA급 이상을 의미하는 A1급 우량 CP는 증권사 은행 연기금 등의 투자 수요로 인해 물량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A2급 이하 비우량 CP에 대한 기피 현상은 심해졌다.

건설·해운사는 추가 금리 3~4%포인트

작년 9월 웅진홀딩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이 기폭제가 됐다. 회사채 신용등급이 A급인 기업도 부도날 수 있다는 우려에 투자 심리는 냉각됐다. 대내외 경기전망이 불확실한 데다 LIG건설 삼부토건 금호타이어에 이어 웅진홀딩스 CP까지 불완전 판매 문제가 불거지자 CP 시장은 급격하게 경색됐다.

중견 건설사의 자금 담당 실무자는 “만기가 돌아온 40억원어치의 CP에 대해 금리를 3%포인트 더 얹어준다고 제안했지만 투자자가 차환을 안 해줬다”며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현금으로 CP를 전액 상환했다”고 말했다. 비우량 CP는 거액 자산가나 일부 공제회, 절대금리를 요구하는 저축은행과 캐피털 등 기타 금융사가 주로 투자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3~6개월 만기의 A3급 CP 수익률은 연 5%대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최근 한 대기업그룹 계열 건설사가 발행한 3개월 만기 A3급 ABCP는 연 9%대 중반에 거래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채에 비해 만기가 짧은 CP 시장이 상대적으로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회사채 신용등급으로 BBB급에 해당하는 A3급 CP는 금리와 상관없이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 않고 있다.

류승화 NH농협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경기 침체 장기화는 상대적으로 비우량 기업의 재무 부담을 더욱 키운다”며 “직접금융시장에서 소외된 비우량 기업은 은행 대출 등 간접금융시장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