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서 깊은 계곡 쪽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아래 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지를 잡고 매달리게 한 다음 한 손을 놓으라고 했다. 아들이 한 손을 놓자 아버지가 다시 명령했다. “나머지 손도 놓거라.” 사색이 된 아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죽을 힘을 다해 가지를 붙들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했다. “수중에 돈이 들어오면 그렇게 꽉 움켜쥐고 놓지 말아라!”

돈 모은 사람들은 대개 한번 들어온 돈을 잘 내놓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들어온 돈보다 나가는 돈이 적도록 관리하는 저축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1960~70년대 우리도 대부분 그랬다. 저축은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을 넘어 국민의 의무로 통했다.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돼 범국민적 저축 캠페인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던 시기다.

저축 장려가 지나치다 보니 때론 강압적 성격까지 띠었다. 초등학생도 ‘저금통장’을 의무적으로 가지도록 해 잔액 검사하는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 안 가겠다고 떼쓰는 아이들이 있었다. 호적초본을 뗄 때도 통장을 확인했다. 어떻든 너나없이 먹고 입는 것 줄여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이 단기간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1988년 무렵 20%에 육박하던 개인저축률이 작년 4.3%까지 떨어지자 정부가 다시 재형저축 카드를 들고 나왔다. 3월 6일부터 총급여 5000만원 이하 근로자와 종합소득액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에게 연 12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재형저축의 원래 명칭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다. 저축을 통한 목돈 마련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로 1976년 도입 당시엔 연 23~25%의 높은 금리를 보장했다. 월 25만원 이하 직장인들의 월급봉투에는 재형저축 공제항목이 있어 대부분 눈 딱 감고 얼마씩 떼어 저금했다. 그렇게 푼돈을 꼬박꼬박 넣어 챙긴 목돈은 결혼하고 집 사는 밑천이 됐다.

새 재형저축 대상에는 개인사업자가 포함됐으니 ‘근로자·개인사업자 재산형성저축’으로 변신했다고 할까. 금리는 연 4% 안팎에서 결정될 것이란다. 과거만은 못해도 7년 이상 부으면 비과세라니 그리 낮은 것만도 아니다. 전 국민 통장갖기 식의 캠페인을 벌일 수는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축이 미래 삶의 기반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국민소득 2만달러를 겨우 넘어섰을 뿐인데 우리 주변에는 카드나 마이너스 통장으로 미리 당겨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새 재형저축이 검약과 절제를 통해 앞일을 대비하고 한 단계씩 부를 쌓아가는 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