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새 정부에 바라는 중소유통정책’ 심포지엄에서다. 주제발표에 나선 A교수는 유통대기업의 확장을 막기 위해 기존 사업(홈쇼핑 재승인) 철회, 신규사업(쇼핑몰 모바일 등) 규제, 기업분할 명령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소유구조와 경영에도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웠다.

이쯤 돼야 효과가 있다는 논리다. A교수의 초법적 발상에 좌중의 중소상공인조차 놀란 표정들이었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대학생들에게 강의할 때도 골목상권이 왜 어려운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대기업의 탐욕을 이유로 꼽는다. 다시 물어본다. 이마트가 아닌 재래시장에 가는지, 파리바게뜨가 아닌 동네빵집에서 빵을 사는지, 편의점이 아닌 구멍가게를 들르는지, 온라인서점이 아닌 동네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지….

과밀경쟁에 자영업 ‘동반몰락’

한두 명쯤 손을 든다. 하지만 대다수는 침묵이다. 물론 대학생들은 순수한 마음이다. 사회정의, 공평 등 ‘정치적 올바름’은 소신을 넘어 신념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골목상점에 가지 않는다. 불편하고, 친절하지 않고, 다양하지 않고, 포인트 적립이 안 되고, 싸지도 않고…. 내 돈 내고 사는데 그런 대접받기 싫다고 한다. 유감스럽지만 차는 한 대도 안 사주면서 쌍용차 국정조사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이 오버랩된다.

요즘 자영업은 참 어렵다. 손님은 줄고 경쟁자는 너무 많다. 서울 변두리의 지하철 OO역 주변 먹자골목엔 반경 30m 안에 치킨집만 7개다. 둘둘치킨, 폼스치킨, 훌랄라치킨, 치킨678, 뚜띠치킨, 핫썬치킨, 치킨뱅이가 줄지어 있다. 불닭, 닭갈비집도 있다. 어느 곳 하나 장사 잘 된다는 얘기는 안 들린다. 자영업의 적(敵)은 자영업인 셈이다.

자영업 과밀현상은 통계로도 확연하다. 자영업자가 무급가족 종사자를 포함해 700만명이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영업 비중이 평균 15.8%, 일본은 12.3%인데 한국은 28.8%다. 음식업, 소매업은 50%도 넘는다. 퇴출 압력이 극심하다는 얘기다. 2011년 치킨집 8100개가 생기고 7600개가 문 닫았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대기업 탓만 해선 해법 없어

정부와 정치권이 골목상권 해법이라고 내놓은 게 음식점·빵집 중기적합업종 지정이요,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 강제휴무다. 기존 자영업자에겐 규제차익이 생길 여지도 있다. 하지만 730만 베이비부머(현재 50~58세)의 창업수요는 어쩔 셈인가. 준비기간 3개월 미만의 ‘묻지마 창업’이 절반이다. 넘쳐나는 식당 사장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2.4년이다. 그나마 창업 위험을 줄일 프랜차이즈 창업마저 막아버렸다.

장사 잘되는 곳을 영업 못하게 한다고 자영업이 살아나진 않는다. 선진국에서 보듯 산업화는 필연적으로 자영업의 기업화로 이어졌다. 이런 발전과정을 부정하는 규제책이 성공할 리 없다. 하책일 뿐이다. 소득 향상으로 소비자 선호는 확 바뀌었다. 아메리카노 찾는데 자판기 커피 내놓고 손님 오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영업 스스로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다.

정부·정치권은 만악(萬惡)의 근원을 대기업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해왔다. 그러나 진짜 만악의 뿌리는 불황이다. 저성장의 짙은 그림자가 자영업 과밀화와 맞물려 ‘동반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물이 차면 모든 배가 뜬다고 했지만, 지금은 물이 빠져 모든 배가 가라앉고 물고기도 죽을 판이다. 진짜 문제를 못 보는 것인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인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