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에서 폴리염화비닐(PVC)을 구매해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 중소업체는 지난해 고민에 빠졌다. 건축경기 침체로 매출이 목표에 한참 못 미쳤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2008년 제품 개발, 원가 개선과 관련해 LG화학의 도움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LG화학의 ‘솔루션 프로젝트’가 다시 한번 가동됐다. 영업부서뿐 아니라 생산, 연구·개발(R&D), 공무 담당까지 모여 머리를 맞댔다. 5개월 만에 외부 자연환경에서 1만시간 이상 견디는 고내후성(햇볕 등에 견디는 성질) 데코시트 등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했다. 거래회사가 생산·판매할 미래 전략제품을 제안한 것이다. 덕분에 이 회사는 고급제품 시장인 유럽에도 진출, 지난해에만 400억원 이상 매출을 늘렸다. LG화학의 PVC 판매량도 연간 7000t 이상 증가했다.

LG화학의 솔루션 프로젝트는 한 해 50건 이상 진행된다. 3~6개월의 단기 활동도 있고, 때론 1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이성만 LG화학 기술연구원 전략기획팀 수석부장은 “고객가치 창출을 최우선으로 한 솔루션 활동”이라며 “잠재적인 필요까지 파악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분야별 협업이 만들어내는 마술”이라고 말했다. 협업은 ‘함께 하는 성장’을 이뤄냈다. LG화학이 세계적인 화학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회사로 발돋움한 힘의 원천이다.

◆글로벌 종합화학 회사로 성장

미국 특허평가기관인 페이턴트 보드(Patent Board)는 지난해 2월 세계 17개국 2500개 기업의 특허 순위를 발표했다. 특허출원 건수뿐만 아니라 특허의 질, 기술력 등을 감안해 평가한 이 발표에서 LG화학은 화학 분야 6위에 이름을 올렸다. 10위권 안에 든 한국 화학기업은 LG화학이 유일했다. 2007년 75위에서 5년 만에 70계단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LG화학은 2010년엔 화학산업 전문 조사기관인 ICIS(Independent Commodity Information Services)에서 선정한 글로벌 화학기업 중 ‘올해 최고의 기업’에 뽑혔다. 매출 기준 세계 100대 화학기업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성과를 거둔 곳으로 꼽힌 것이다. 아시아 기업으로는 처음이었다.

2000년대 초만해도 LG화학은 ‘국내 맏형’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세계적인 화학기업들과의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LG화학은 매출 기준으로 전 세계 종합화학회사 중 6위로 성장했다. 영업이익 규모는 일본 경쟁사들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신용등급도 무디스로부터 A3, S&P에서는 A를 받았다. 독일 바이엘과 같은 수준으로 국내 화학·정유회사 중 최고 등급이다.

◆‘기술의 힘’ …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그동안 국내 화학기업들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을 펴왔다. 그러나 LG화학은 차별화한 기술과 뛰어난 상품으로 그 틀을 깼다.

대표적인 제품이 필름패턴 편광 안경방식(FPR) 3D TV용 광학필름이다. LG화학이 2010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지난 20년간 광학필름 분야를 주도하던 니토덴코, 스미토모 등 일본 업체들을 제쳤다. 일본 경쟁기업들이 뒤늦게 반격에 나서고 있지만, LG화학은 세계 시장점유율 85%라는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석유화학 사업에서도 미국, 일본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던 분야를 독자기술로 파고들었다. 촉매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 폴리올레핀 제품이 한 예다. 석유 화학 제품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에 의해 그 성능이 결정되는데, 주로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독점해 왔다.

LG화학은 1990년대 말 국내 최초로 독자적인 공법을 통해 ‘차세대 촉매’로 불리는 메탈로센계 촉매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2008년에는 고무와 플라스틱의 성질을 함께 가진 엘라스토머 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성환두 LG화학 홍보팀장은 “불가능해 보였던 미국, 일본 기업들의 아성을 촉매에서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허물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기업들의 견제도 거셌다. 미국 다우케미컬은 2009년 “LG화학 제품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해 2월 “특허 침해 근거가 없다”고 LG화학의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10여년간 독자 개발한 고유 기술을 인정받은 것이다. LG화학은 메탈로센 촉매를 활용해 만든 고부가 폴리올레핀 제품으로 연간 4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화학적 협업’의 조직문화

LG화학은 원유에서 뽑아낸 나프타를 원료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만든다.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첨단 정보기술(IT) 기기에 적용되는 정보전자소재와 휴대폰, 노트북,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배터리도 생산한다. LG화학의 경쟁력은 이같이 광범위한 소재 속에서 하나로 뭉치는 ‘화학적 협업’의 조직문화에 있다.

협업은 국내 업체와의 관계에 머물지 않는다. 이란의 한 자동차 부품회사엔 기존 단품 개발 방식이 아닌 부품 통합 솔루션을 제공, 매출이 크게 늘어나도록 했다. LG화학에서 고품질의 원료와 공정 노하우를 전수받은 중국 의료용 장갑 제조업체는 매출이 20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R&D 분야도 마찬가지다. LG화학 기술연구원은 3개의 사업분야별 연구소와 미래 기반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CRD연구소로 이뤄져 있다. 200개 이상의 연구팀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하나의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각 연구팀은 각자의 강점에 맞춰 가상의 조직(virtual one team)을 꾸려 움직인다. LG화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FPR 3D TV용 광학필름도 정보전자소재 연구소의 액정광학 필름팀과 광학용 고분자팀, CRD연구소의 레이저패터닝 기술팀의 합작품이었다.

◆시장 선도를 위한 투자 지속

LG화학의 지난해 매출은 23조2630억원, 영업이익은 1조9103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보다 2.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32.2% 줄었다. 하지만 업황 부진에 시달린 국내외 경쟁사들과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화학은 올해도 시장 선도를 위한 투자를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작년에 비해 2.2% 늘어난 2조1200억원을 시설투자비용으로 쓸 예정이다. 매출 목표는 작년보다 6.9% 증가한 24조8600억원으로 잡았다.

석유화학 부문은 에틸렌 80만t, 폴리에틸렌 84만t 생산 규모의 카자흐스탄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와 기술 기반의 핵심사업인 고흡수성수지(SAP), 고기능성 합성고무(SSBR) 투자에 주력할 방침이다. 정보전자소재는 미래 핵심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LCD 유리기판 공장 추가 증설에 나설 예정이다. 편광판, 3D FPR, 터치스크린패널용 인듐산화전극(ITO) 필름도 시장 선도제품으로 키우기로 했다.

김종현 LG화학 자동차전지 사업부장(전무)은 “전지부문에서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자동차 전지 세계 1위 입지를 굳건히 다질 것”이라며 “강점을 갖고 있는 폴리머 전지 생산라인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