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법무법인 세종 고문이자 전 KB금융지주 회장(61·사진)이 금융당국의 직무정지 처분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적 판단에 대해 감독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4일 “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는데도 중징계를 받았다”며 황 고문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제재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재를 내릴 때 행위시점이 처분의 기준이 돼야 한다”며 “원고가 우리은행장에 재직 중일 때는 이 같은 처분을 내릴 법적 근거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앞서 황 고문은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해 결과적으로 은행에 1조1700억여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2009년 9월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중징계가 확정된 뒤 4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다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규정에 따라 당시 황 고문은 KB금융 회장직에서 곧바로 물러났다. KB금융 회장에 선임된 지 1년 만이었다. 황 고문은 이듬해 3월 “책임 없는 투자 손실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다”며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황 고문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게 무척 부담스러웠고 주변에서도 실익이 없다며 말렸지만 최종 승소해 기쁘다”며 “당국의 감독권한 남용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CDO 등 투자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분명히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황 고문이 수년간 끌어온 소송을 마무리하면서 언제쯤 금융권으로 복귀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회사 CEO가 되기에 결격 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황 고문은 작년 7월 차바이오앤 회장직에서 2년7개월 만에 물러나면서 “언젠가는 친정인 금융권에 다시 복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 고문은 승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금융계의 검투사’로 불린다. 삼성증권 사장과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KB금융 회장 등 금융권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황 고문이 당국과 각을 세워온 만큼 금융회사 CEO로 재취업하기보다 직접 금융회사 설립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황 고문은 “금융인은 금융 일을 해야 하는 만큼 법무법인 세종에 근무하면서도 금융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며 “사모펀드를 만드는 것도 대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조재길/김병일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