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가 다소 누그러든 지난 16일 오전. 안동호(湖)를 앞에 두고 영지산 자락에 둘러싸인 국학문화회관에 109명의 NH농협은행 신입행원들이 모였다. 신입 교육 7주차 과정인 ‘선비정신체험’을 위해 경상북도 안동을 찾은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서류 접수를 시작으로 12월26일 최종 합격을 통보받고 지난 1월3일부터 연수를 받고 있다. 오는 25일 17명은 본사로, 92명은 전국의 각 지점으로 배치된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고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까닭일까. 7주 동안 함께한 이들의 표정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금융인의 필수 덕목인 ‘청렴’을 배우기 위해 안동을 찾은 이들의 1박2일을 따라가 보았다.

◆신입행원 109명, 정직을 배우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김종길 원장이 입교식을 통해 손님들을 먼저 맞이했다. 이후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병일 수련원 이사장(68)이 ‘21세기 나의 행복한 삶과 선비정신’을 주제로 강연하며 “내가 건강해야 고객도 감동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퇴계 선생의 DNA를 체득하기 위해 다음으로 들린 곳은 도산서원이었다. 알묘례(謁廟禮)에 앞서 도포와 유건을 받아든 행원들은 고름 매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서로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까르르 웃던 이들은 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에 들어서자 이내 곧 차분해졌다. 김미은 씨(25·전남대 통계학과 졸)는 휴대폰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남기며 “영업점에서 유니폼을 갖춰 입고 고객을 대할 때도 지금 마음가짐처럼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비의 마음가짐을 배우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긴 곳은 퇴계 이황의 종택. 도산서원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에는 16대 종손 이근필 선생이 방문객들을 반겼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무릎을 꿇고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에 행원들 역시 모두 무릎을 꿇었다.

탐방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뒤에는 ‘수신제가치국’을 주제로 분임토의를 시작했다. 한 행원은 “선비의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보내보니 돈을 다루는 금융인으로서 ‘돈 보기를 돌같이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녁 8시무렵부터 시작된 토의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현금거래 가장 많다는 설 다음날 배치

임원 면접 때 필수 질문이라는 농협은행의 핵심가치 네 가지 ‘고객본위·성과중심·혁신추구·상호신뢰’를 체화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 신입행원들은 3대 전략과목인 수신·여신·외환을 각 과목당 32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배우며, 실제 은행에서 쓰는 전산 프로그램을 익힌다. 그동안 배운 것들을 현장에서 실습하기 위해 설 다음날인 12일과 13일에는 집 근처 영업점을 방문했다.

안나영 씨(24·숙명여대 경영학과 졸)는 서울 명일동 지점으로 출근해 입금 거래를 하러 온 첫 고객을 맞이하며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간단한 업무지만 제가 너무 긴장하니까 오히려 딸 같다며, 천천히 하라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첫 출근 소감을 밝혔다. 설 이튿날은 1년 은행 업무 중 현금거래가 가장 많은 날로, 긴장감을 심어주기 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5급 신입행원들의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구성한 여명동 NH농협은행 청주교육원 교수는 가장 인상적인 교육 과정으로 ‘타임캡슐’을 꼽았다. 일명 ‘초심 프로젝트’인 이 과정은 신입사원들이 1년 동안의 목표를 직접 설정하고 작성해 청주교육원 타임캡슐에 보관하는 것이다. 올해 농협은행 목표 손익은 9150억원으로, 각자의 목표 실적을 기록한다. 이를 통해 “1년 후, 더 나아가 직무 및 전문 과정 교육을 위해 청주를 찾았을 때, 신입행원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농협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윤경 한경잡앤스토리 기자 roh@jobn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