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은 지난 30년이었습니다.”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둔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65·전 고려대 총장·사진)는 지난 30년간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 시민운동가 1세대’로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활동하며 박원순 서울시장(참여연대) 등과 함께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경제 정의’ 실천 방안으로 금융실명제 및 토지공개념 도입, 한국은행 독립 등을 요구했다.

1982년부터 고려대에서 학생을 가르쳐 온 이 교수는 “영혼이 사라진 대학 사회를 개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교수들은 논문 건수의 노예로, 학생들은 학점과 스펙의 노예로 내몰리는 대학 사회 현실에 대해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가 후배들에게 조언도 했다. 그는 “시민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정·관계에 진출하는 것은 운동의 순수성을 떨어뜨린다”며 “시민운동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2006년 서울대 학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고려대 총장이 된 그는 시민단체 활동에 따른 인지도 등으로 큰 지지를 받았지만 논문 표절 의혹에 발목이 잡혀 총장직을 67일 만에 사퇴했다.

이 교수는 당시 표절 의혹에 대해 “대학원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매일 함께 연구한 내용을 1988년 교내 논문집에 투고한 것”이라며 “그때 관행으로는 문제가 없는 일이어서 지금도 억울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당시 총장이 됐다면 고려대를 학문을 수출하는 대학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사퇴 이후 연구에 더 매진하고 학생들과도 더 많이 함께할 수 있어 오히려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달 말 정년퇴임 이후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로 계속 강단에 설 계획이다. 그는 “선생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한 강단에 설 때가 가장 행복한 것”이라며 “‘가수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나 역시 끝까지 강단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에서 내달부터 ‘미시금융론’ ‘응용금융경제학 연구’ 등의 과목을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