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한 달 동안 ABC 외울 땐 힘들어서 정말 죽겠더라고요. 손자한테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해도 ‘그냥 하면 돼요’라고만 하고…. 그 고생해서 졸업장을 땄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20일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박순삼 할머니(91·사진)의 목소리는 망백(望百)의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또랑또랑했다. 청력에도 이상이 없는 듯 기자가 묻는 말에도 빠짐없이 대답했다.

박 할머니는 서울시교육청의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21일 졸업장을 받는 433명 가운데 최고령자다. 2011년 초 동네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안천초교(독산동) 정문에 걸려 있는 프로그램 모집 안내를 보고 용기를 냈다.

“어린 시절은 일제 강점기라 학교를 다닐 상황이 아니었어요.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시는 걸 따라하면서 겨우 가나다만 읽고 쓰는 정도에서 배움을 멈췄어요. 스무 살에 시집가서 살림하고 살다 보니 어느새 90이 넘었네요.”

박 할머니는 2010년에도 마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한글 과정을 석 달가량 다녔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1주일에 한 번만 가는 데다 전문 인력이 적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학교에 와보니 1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꼬박꼬박 공부할 수 있어서 배우는 게 많았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읽을 수 있는 국어가 가장 좋았고 영어 단어도 이제 좀 알아보게 됐죠. 중급(3~4학년 수준) 1년, 고급(5~6학년) 1년 이렇게 2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박 할머니는 21일 방배동 서울특별시교육연수원에서 열리는 졸업식에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이 수여하는 우수학습자 상을 받는다.

시교육청은 2011년 전국 최초로 초등학력 취득이 가능한 문자해득프로그램 운영을 시작, 지난해 첫 졸업생 354명이 나왔다. 시내 초·중학교나 평생교육시설 등에서 30개 과정을 운영 중이다.

공부를 더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라가 참 잘살게 되고 인정이 있어서 늦게나마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체력도 아직 괜찮고 공부를 더했으면 좋겠는데 앞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