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도 안되는 필름콘덴서로 1년에 1300억 매출…"삼성 TV 절반은 우리 제품 써"
2004년 3월. 서울 가산동에 있는 필름콘덴서 제조업체 성호전자(회장 박현남·60)가 발칵 뒤집혔다. 주요 고객사인 삼성과 LG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몰려들었다. 박현남 회장 휴대폰에는 불이 났다. 여기저기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임원들을 긴급 소집해 비상회의를 하는 중에도 박 회장은 전화를 받으며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불량이 문제였다. 믿었던 협력사 부품에서 불량이 발생해 고객사 TV 생산라인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두 회사 TV의 50% 이상에는 성호전자 필름콘덴서가 들어간다. 사연은 이렇다. 당시엔 콘덴서를 도금하는 재료로 납을 썼다. 그러나 세계적인 환경 보호 정책에 따라 3년 후에는 납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글로벌 TV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과 LG는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알게 된 성호전자가 경쟁사들보다 몇 달 앞서 납을 주석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는데 공급한 부품에서 불량이 발견된 것이다.

100원도 안되는 필름콘덴서로 1년에 1300억 매출…"삼성 TV 절반은 우리 제품 써"
박 회장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칫하면 20여년간 거래한 고객을 놓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고민 끝에 낸 결론은 정면돌파. 고객사 관계자들 앞에 선 그는 “정말 죄송하다”고 정중히 사과하며 이렇게 말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먼저 문제를 경험했으니 원인 파악과 문제 해결도 한발 빠르게 하겠습니다. 완벽한 부품을 최대한 빠르게 공급하겠습니다.”

정공법은 통했다. 고객사 관계자 사이에서 도금 재료를 바꾸는 게 업계 1위 기업도 불량을 낼 만큼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인식이 퍼졌다. 성호전자 경쟁사들은 아직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때여서 달리 방법도 없었다. 17년여간 콘덴서 한우물을 파온 박 회장 자신도 해법을 찾기 위해 연구소 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그는 “3개월 넘게 검증하고 또 검증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져 죽다 살아났다”며 “‘지구상에서 성호라는

이름을 없애버리겠다’는 말에 죽기 살기로 완성도를 높여 문제를 해결했다”고 기억했다.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한 덕분에 성호전자는 오는 6월1일 창립 40주년을 맞게 됐다. 박 회장이 오너 경영인으로서 성호전자를 이끈 지 17년여 만이다.

원래 성호전자는 박 회장의 첫 직장이었다. 선린상고 졸업 후 1977년 성호전자의 전신인 진영전자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관세환급 업무로 시작해 영업부장을 끝으로 1985년 회사를 떠났다. “내 사업을 해보겠다”며 이듬해 청계천에 콘덴서 오퍼상을 차렸다. 사무실은 6.6㎡(약 2평)로 초라했지만 수완이 좋았다. 3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3년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박 회장은 “내일까지 보내 달라고 주문이 들어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에 출발해 아침 일찍 배송을 마쳤다”며 “최선은 감동의 다른 이름”이라고 풀이했다.

그러기를 8년.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1993년 2월, 성호전자 오너 사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회사를 맡아 달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박 회장은 깜짝 놀랐다. 성호전자가 5년째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폐업의 기로에 있었던 것. 현장을 보자 눈앞이 캄캄했다. 생산라인엔 거미줄이 쳐 있었고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이었다. 그럼에도 월급 사장직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그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저에게 일감을 준 첫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며 “업(業)을 잘 알기 때문에 잘할 자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경영인이 된 후 가장 먼저 회사 경비실에 침낭을 갖다 두고 간이 숙소를 꾸몄다. “회사와 한몸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6개월간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직원들과 쉬지 않고 소통하고 현장을 챙겼다. 5년째 제자리인 급여가 불만이라는 얘기에 사기 진작을 위해 월급을 올려줬다. 사재를 털었다. 월 3억원이었던 매출이 10분의 1 토막 난 탓에 은행 문턱은 높았다. 그러고 나서는 성과제까지 도입했다. 직원별로 목표 달성 정도에 따라 상여금을 주기로 한 것.

박 회장은 “처음엔 돈에만 만족하던 직원들 눈에서 차츰 빛이 났다”며 “3개월 지나서는 ‘목표를 아직 못 채웠다’며 스스로 일요일에 나와서 일하더라”고 했다.

덕분에 성호전자는 박 회장이 전문경영인으로 취임한 지 1년6개월 만에 흑자 전환했다. “주인이 따로 있다”는 오너 사장의 제안에 박 회장은 1997년 성호전자 지분 100%를 인수, 자신을 받아준 첫 직장의 오너 경영인에 등극했다. 1966년 13세의 나이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벽 기차를 타고 전남 강진에서 나 홀로 서울에 올라온 지 31년 만이다. 인수 당시 70여억원이었던 매출은 2011년 1320억원으로 19배 가까이 성장했다. 개당 단가가 100원이 채 안 되는 필름콘덴서 한 제품을 팔아서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출하한 콘덴서만 74억여개에 달한다.

박 회장은 철저한 연구·개발(R&D) 중심 경영을 지속 성장의 첫째 원동력으로 꼽았다. 그는 “회사를 인수한 뒤 가장 먼저 기계설비팀을 만들고 수입하던 설비를 모두 국산화했다”며 “자체 설비로 생산하기 때문에 수율(투입량 대비 완성품 비율)과 효율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와 중국에서 9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국내 직원 80여명 중 40여명이 R&D 인력이다.

둘째는 신기술 투자다. 2011년 매출이 전년 대비 15% 정도 빠졌지만 증착필름 생산라인에 100억원 넘게 투자한 게 좋은 예다. 박 회장은 “원가 비중이 제일 큰 증착필름을 자체 생산하면 경쟁력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진다”며 “지난해 시범 생산을 끝냈고 올 2분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대만과 중국에서 러브콜이 계속 들어와 수출도 할 계획”이라며 “가전 이외에 모터, 신재생에너지, 의료기기 등 부가가치가 더 큰 산업용 중대형 콘덴서도 조만간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100원도 안되는 필름콘덴서로 1년에 1300억 매출…"삼성 TV 절반은 우리 제품 써"
구내식당 '가산동 맛집' 소문…20년 꾸준히 山에서 단합대회

직원 건강 챙기는 회사


서울 가산동에 있는 성호전자 사무실에 들어서면 유난히 ‘산(山)’ 사진이 많다. 모두 임직원들이 다녀온 산이다. 이 회사는 박현남 회장이 부임한 1993년부터 20년간 꾸준히 임직원 단체 산행을 진행하고 있다.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봄과 가을에는 체육대회도 연다. 행사 마지막엔 항상 바비큐·불고기 파티 등을 통해 일하며 쌓인 스트레스와 서로 다른 부서 직원 간 서먹함을 해소한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회사에서 지급한 두둑한 상여금이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준다.

이런 기업 문화는 중국 공장에도 그대로 전파됐다. 마치 1980년대 한국의 초등학교 운동회를 연상시키는 각종 운동 경기 시합이 열리고 한국과 중국 직원들이 어울려 다과를 즐긴다. 손용구 성호전자 이사는 “900명의 직원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자유(힘내라)’를 외치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며 “국적과 언어, 문화는 다르지만 성호전자라는 한울타리에서 같이 살며 가족애를 다지는 자리”라고 말했다.

국내 본사 구내식당은 가산동에서 ‘맛집’으로 유명하다. 다른 공장 직원들이 찾아올 정도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식사는 항상 최고로 대접해야 한다는 박 회장의 철학이 구내식당을 가산동 맛집으로 키워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 이사는 “비용 절감한다고 식사의 질을 조금이라도 떨어뜨리면 불호령이 떨어진다”며 “회사의 확실한 지원 덕분에 메뉴도 다양하고 특히 주방장의 전라도 손맛이 일품”이라고 강조했다.

성호전자는 또 매해 10여명의 모범 사원들을 선정, 해외여행 특전을 제공하고 있다. 10년 장기근속자에게는 금 1냥(10돈)짜리 ‘행운의 열쇠’도 지급한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