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 니가타를 상징하는 코드는 ‘눈’ 이다. 한국과 동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니가타 현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1911년 오스트리아의 레르히 소령이 스키를 전파한 이후 니가타는 일본 스키어들의 성지가 됐고 50여개가 넘는 스키장이 들어섰다. 겨울 니가타 여행은 뽀송뽀송한 파우더 설질을 자랑하는 명품 스키장과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과 함께 일본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사케가 있어 더욱 즐겁다.

◆묘코고원에서 즐기는 파우더 스키

묘코산(2454m)을 중심으로 펼쳐진 거대한 고원에는 모두 9개의 스키장이 있는데 스기노 하라, 아카쿠라 간코 리조트가 손꼽힌다. 묘코고원은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 건너온 스키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스기노 하라에서 가장 높은 슬로프는 해발 1855m에서 시작하며 길이가 8.5㎞로 일본에서 가장 길다. 스키장의 규모가 크고 일본 스키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서 국내 스키장처럼 리프트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풍경은 여간해서 찾아보기 어렵다.

눈은 말 그대로 파우더 스노 상태. 단단한 국내 스키장들의 슬로프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넘어져도 아프지 않지만 눈이 쌓여 있는 가장자리는 푹푹 빠진다. 눈에 덮인 슬로프 주변 삼나무 숲이 동화 속 풍경 같다. 스기노 하라에선 곤돌라는 1기, 리프트는 5기가 운영된다. 아카쿠라 간코 리조트 역시 1937년부터 운영된 유서 깊은 스키장이다. 슬로프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산맥의 장엄한 풍광이 아름답다. 곤돌라 1기, 리프트 9기를 갖췄다. 일본 자위대 병력이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슬로프에서 스키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니가타의 명품 사케와 만나다

눈이 녹아내린 부드러운 성질의 물은 니가타를 상징하는 또 다른 코드 사케(일본주)를 빚어냈다. 쌀과 물,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예술품인 사케는 효고, 돗토리 등을 비롯한 일본 거의 전 지역에서 생산된다. 니가타 생산량은 전국 3위지만 95개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500여개 사케의 브랜드 파워는 전 세계적으로 통한다.

한국 주당들에게 사랑받는 핫카이산, 구보타(사진), 조젠미즈노 고토시, 고시노간파이 등이 모두 니가타에서 생산되는 술이다. 이외에도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미도리카와, 아유 마사무네 등 온갖 명주들이 니가타에 가득하다.

사케는 쌀로 빚은 술이다. 일본에서 으뜸가는 쌀이 생산되는 니가타는 그 유명한 고시히카리처럼 밥을 짓는 쌀도

생산하지만 양조용 쌀을 별도의 품종으로 구분해 재배하는 것이 우리 전통주와 다른 점이다. 양조용 쌀은 성질이 까다롭기 때문에 밥을 짓는 쌀보다 띄엄띄엄 재배하며 대량 수확이 어렵다. 정미와 도정 작업은 사케의 품질과 맛, 향을 결정하는 핵심 공정이다. 쌀을 깎는 정도에 따라 사케의 등급이 결정되는데 많이 깎을수록 고급품을 만들 수 있다. 다이긴조 등급은 50%만 남기고 쌀을 깎아내 최고의 부드러움과 깔끔한 맛을 자랑하며, 긴조는 60%, 혼조조는 70%를 남기고 깎아 낸다.

극상품의 사케를 만들려면 소한부터 14일째 되는 날에 물을 길어서 술을 빚는다. 기운이 깨끗하고 맑은 날이기 때문이다. 눈이 녹아내린 니가타의 물은 기본적으로 연수의 성격을 지녔다. 부드러운 목 넘김의 결정적인 비밀이다. 이런 물로 만드는 사케는 발효가 느려서 관리 및 제조가 까다롭다. 모든 사케는 제 각각의 매력을 지녔다. 일본의 주류법에 따라 등급을 나누지만 가장 맛있는 술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다만 긴조 등급 이상을 시키면 좋은 술을 만날 확률이 높다.

◆향미 풍부 고급 사케 차야 제맛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시킬 때 확인할 것은 사케의 등급과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표시된 일본주도, 그리고 아미노산도를 참고하면 된다. 보통 +가 높을수록 진하고 드라이한 가라구치 사케가 되며 -가 높다면 깔끔한 단맛의 아마구치 사케가 된다. 잘 모르겠다면 사케 소믈리에 격인 ‘기키자케시’에게 물어보자. 니가타에는 5000여명 이상의 기키자케시가 활동하고 있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을 땐 유명한 브랜드를 고르면 실패가 적다. 그리고 병의 모양새와 라벨의 재질이 고급스럽다면 안에 담긴 내용물도 거기에 따라갈 확률이 높다. 사케병은 빛을 차단하기 위해 갈색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급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초록색 병을 쓰기도 한다. 맨들맨들한 종이 스티커가 아닌 일본 전통지로 만든 뽀송뽀송한 라벨이라면 당연히 고급품이다.

사케를 마실 때에는 병 뒤에 쓰여 있는 음용 온도를 참고하면 좋고, 만든지 너무 오래되지 않은 술을 고르는 게 현명하다. 사케는 기본적으로 장기 숙성하는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잔 역시 중요한데 향미가 뛰어난 고급 사케는 차갑게 해서 나팔모양으로 벌어진 잔에 마신다. 니가타 사케 여행의 최적기는 역시 스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겨울이 꼽히지만 매년 3월 열리는 사케 박람회 격인 ‘사케노 진’에 맞춰 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 행사에서는 온갖 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사케를 한자리에서 싸게 즐길 수 있다.

여행팁

대한항공 직항을 타면 니가타까지 2시간이 걸린다. 도쿄역에서 조에쓰 신칸센을 타고 가도 된다. 몇 개 도시를 돌아볼 경우에는 4일간 동일본 지역의 신칸센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JR이스트패스’(비연속 4일간 2만엔)를 이용하는 게 낫다. 니가타 조에쓰시의 가나야산 스키장에는 일본에 스키를 전파한 레르히 소령의 동상과 스키박물관이 있다. 조에쓰 신칸센 에치고유자와역에 있는 에치고 술박물관 폰슈칸도 가볼 만하다. 500여개의 사케를 시음할 수 있다. 에치코유자와 온천 다카한료칸(高半旅館)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을 집필한 방과 작은 기념관이 있다.

니가타의 맛을 대표하는 것은 기와미 스시다. 신선한 해산물과 최고급 쌀 품종인 고시히카리로 만든 초밥 브랜드이다. 성게·연어알·참치를 기본으로 제철 해산물인 게와 방어, 남방새우, 한치 등 10가지 초밥을 맛 볼 수 있다. 1인분에 3000엔. 두부와 버섯, 배추 메밀가루 등을 넣어 익혀 먹는 기노코나베 또한 별미다. 니가타 여행정보를 얻으려면 니가타현 관광협회 홈페이지(enjoyniigata.com/korean) 참조.

니가타=전기중 여행작가 eee0e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