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엊그제 취임사에서 언론과 국민이 거의 주목하지 않은 구절이 있다. 바로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한다”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21분간 취임사를 읽으며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흘려 듣기 쉬웠을 것이다. 언론들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등 소위 3대 키워드를 해석하기 분주했다. 또 국민행복이란 말을 몇 번 썼는지, 국정과제에서 빠진 경제민주화가 취임사에서 언급됐는지 등에 주목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취임사에 ‘소통과 통합’이 없다고 폄하하기도 했다.

사실 박 대통령의 취임사가 명문(名文)은 아니었다. 매끄럽지 않아 손을 봐야 할 문장도 많았다. 주관적이고 애매한 국민행복을 국정 모토로 삼은 것이나, 경제를 정치와 도덕으로 재단하는 경제민주화로 창조경제를 꽃피우겠다는 등의 언급은 다소 비논리적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이 취임사는 그러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지만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한다’는 대목에 와서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바로 이 부분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의 백미였다. 이 구절이야말로 그가 국민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의 정수였을 것이다. 이어 “국민들이 각자 위치에서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도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한 것을 보면 그 의미는 더욱 또렷해진다. 국민에게 욕구의 절제를 호소하고, 진정한 법치와 공화적 질서를 통해 민주적 질서를 완성하겠다는 통치철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직역·지역 이기주의가 판치고, 만인 대 만인이 이익투쟁을 벌이는 작금의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절제를 호소하고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그 어느 대통령도, 어떤 정권도 국민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소수의 권리를 침해해도 다수라면 정당화됐고, 절제되지 않은 욕구가 만연했으며, 거리는 뿌연 먼지와 고성으로 뒤덮여, 이런 것이 민주주의인 양 집단착각마저 불러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낡은 정치에서 벗어나자는 것이 엊그제 박 대통령의 취임사였다. 우리는 그런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4.0’으로 불러봄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박 대통령이 바로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