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의 정의감이 갑자기 용솟음친 것일까. 아니면 집단최면 상태에 빠진 것일까. 줄줄이 사탕처럼 기업인들에게 실형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센스 있는 판사들이 어련히 알아서 판결하지 않았겠나.” 검찰의 한 고위간부가 던진 말에는 판사들의 ‘정치감각’에 대한 비난이 묻어 있었다. 판사들은 ‘양형기준’ 핑계를 댄다. 대법원에서 만들어 2009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양형기준을 기계적으로 들이대다 보니 형을 깎아줄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예전 판결문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던 ‘경제기여도’나 ‘경영공백’이란 용어는 양형기준표에선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손쉬운 양형기준표에 끼워 맞추느라 정작 헌법에 규정된 ‘법률과 양심’이란 잣대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양형기준’ 핑계대는 판사들

권력의 ‘입맛’을 겨냥한 ‘맞춤형 판결’의 말로는 자명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7일 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로 징역 10~15년형을 받은 김진홍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인명진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등 6명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30여년 전 유신정권의 눈치를 보며 징역형을 붕어빵처럼 찍어낸 선배판사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후배판사들은 허리가 휘어질 정도다.

‘유전무죄’ 판결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양형의 기본은 죄를 범한 만큼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과거 내린 관대한 판결의 반작용으로 역차별해서도 안된다. 땅에 떨어진 사법부 신뢰 회복에 기업인을 희생양 삼아선 더더욱 곤란하다. 판사들이 성인군자도 아니고 어떻게 여론과 권력 눈치를 안 볼 수 있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판사는 외로운 직업이다. 대중의 인기에 연연하는 판사는 옷을 벗고 정치권에 뛰어들면 된다.

1891년 5월11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가 테러를 당했다. 그를 호위하던 일본 순사(경찰)가 차고 있던 칼을 휘둘렀다. 다행히 뒷머리를 살짝 스치는 찰과상에 그쳤지만,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사색이 된 메이지 일왕과 일본 정부는 위기타개책으로 이 순사를 극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일본 왕·왕후·왕세자를 공격한 경우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한 형법 116조를 적용해달라고 판사들을 설득해 약속을 받아냈다.

‘국익’ 빙자한 포퓰리즘 떨쳐야

하지만 사무라이 출신의 고지마 대심원장(대법원장)이 가로막았다. 그는 형법 116조는 일본 왕족에게 적용되는 조항이지, 외국의 황족에게 확대적용해선 안된다며 판사들의 마음을 되돌렸다. 결국 이 순사는 사형 대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일로 인해 고지마 판사는 대심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테러 장소를 따 ‘오쓰(大津) 사건’으로 불리는 이 판결은 일본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는 왜 고지마 같은 판사가 없을까. 판·검사들이 여차하면 변호사와 행정관료로 둔갑하는 한국적 풍토에서 ‘고지마’는 백년하청이다. 법복을 벗어던지자마자 대형 로펌으로 달려가 동료·선후배 판사들이 구속시킨 사람들을 변호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게 우리 사법부의 현주소 아닌가. 그것도 모자라 관직에 나섰다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고액 연봉으로 연방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라니.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경제민주화의 향방은 여전히 불명확한 것 같다. 판사들이 어떻게 ‘센스 있게’ 반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