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제가 터지고 있다. 대기업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에 대한 규제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중소 제조업체들의 경영상황을 오히려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업체들마다 원부자재와 소모성 자재 단가가 올라 구매비용이 과거보다 10~15%나 급증하고, 안하던 구매업무까지 늘어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사실 처음부터 우려했던 일이었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대기업 MRO가 소위 일감몰아주기를 한다며 영업을 규제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이런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 내부거래 비율이 30% 이상인 MRO 업체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신규사업을 하지 못하게 막은 탓에 중소 제조업체들은 자재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중소 유통상만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비용은 비용대로 증가하고, 인력도 늘려야 하는 지경이 돼버렸다.

유통상을 살리겠다고 제조업체들은 모두 문을 닫으란 것이냐는 원성이 터져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중소 유통상에 납품하는 중소·영세업체들도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업체들의 가격 시스템이 투명하지 않아 헐값 납품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하고 그나마 연고가 없으면 납품 기회를 잡기도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가격 품질 외에 연줄과 별도의 영업활동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녀사냥식 MRO 규제의 뒤끝이다.

일감몰아주기라고 공격했지만 처음부터 MRO업체가 계열사로부터 과대 물량을 주문받거나,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납품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경제 생태계만 파괴되는 중이다. 가치사슬의 끝에 있는 영세 납품업체들은 끈이 떨어질까봐 걱정하고 최종 수요자인 제조업체는 되레 비용증가로 경영난을 걱정한다. 대기업들이 하나둘씩 철수한 MRO시장은 중소기업으로 포장한 글로벌 업체들이 점차 점령하는 중이다. 골목에서 대형마트들의 자리를 일본계 편의점들이 장악하는 것과 똑같다. 경쟁이 사라지니 연고주의가 판치고 이중잣대, 역차별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MRO 문제는 처음부터 오류였다. 잘못 시작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똑똑히 봐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