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의류 제조사인 서울 구로구의 A사는 원래 국민은행과 거래했다. 5년째 영업이익을 내고 흑자 폭도 확대되는 이 회사를 국민은행은 최상위 신용등급으로 평가하고 공을 들였다. 하지만 A사는 작년 9월 국민은행에서 받은 12억3000만원의 대출을 우리은행으로 옮겼다. 우리은행이 경영진단에서부터 성과관리 시스템 도입, 재무관리 노하우 전수, 공장 원가절감법 제시 등 체계적인 무상 컨설팅을 제공한 때문이다.

우량 중소기업을 둘러싼 은행 간 쟁탈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중소기업 육성이 새 정부의 주요 정책기조가 되면서 관련 대출을 늘려야 할 상황인 반면 우량 중소기업은 한정돼 있어서다. 우량 중기 확보과정에서 지점에 역마진이 날 경우 본사에서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은행도 등장했다.

◆우량 중소기업 뺏고 뺏기는 상황

중소기업 대출시장에서 최근 가장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곳은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중소·중견기업에만 제공하는 연 3%대 특별저금리대출을 3조원 규모로 공급했고 이를 다 소진하자 올해 다시 2월까지 2조원을 더 내놨다.

실제 중소 패널제조업체인 A기업은 충남 천안지역에서 15년 전 설립됐을 때부터 기업은행과 꾸준히 거래해온 곳이었지만 지난해 12월 산업은행으로 갈아탔다. 기업은행에서 30억원을 연 5% 후반 금리로 쓰고 있었는데 산업은행이 35억원에 연 4% 중반의 금리로 대환해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도 우량 중기 확보에 전력하고 있다. 지난해 9월 경기 남양주의 한 대형병원에 세무상담 및 재무관리 컨설팅을 해준 뒤 농협은행과 거래하던 28억원의 대출을 빼앗아오기도 했다. 이 병원의 신축 이전을 위한 건축자금으로 95억원을 신규로 빌려줬다.

◆기업은행 거래 기업이 주요 공략대상

은행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대상은 기업은행 거래처들이다. 한 시중은행은 최근 부행장 회의를 거쳐 기업은행 거래처를 집중 공략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중소기업 네트워크가 가장 활발한 기업은행이 우량 중기와도 많이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00조6000억원 규모로 시중은행의 전체 중소기업대출 잔액에서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마다 기업은행과 거래 중인 우량 중소기업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며 “기업은행을 제외한 은행 간에 명단을 교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은행은 최근 지점에서 우량 중소기업을 뺏기지 않기 위해 손해를 안고서라도 금리를 인하하거나 대출을 늘려준 경우 손실분만큼을 본점에서 보전해주는 ‘손실기금’도 운영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각 영업점에서 역마진을 내고서라도 반드시 거래를 유지해야 할 중소기업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본점의 여신 및 재무관리부서의 심사를 통해 지점별 성과평가에서 이 같은 손해분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