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미술시장이 침체에 빠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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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
요즘 화랑가를 둘러보면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고객 발길이 뜸하고, 유명 작가 초대전에서도 판매 성사를 의미하는 ‘빨간 딱지’를 구경하기 어렵다. 미술계는 그 원인 중 하나를 당국의 양도세 부과에 돌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뜩이나 불황으로 매수세가 위축된 마당에 부양책을 마련해주지는 못할망정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황이 힘겨운 것은 미술계뿐만이 아니다. 모든 산업부문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도 미술계만 유난히 심한 몸살을 앓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예술품 소비, 공산품과 달라
예술에 대한 소비는 공산품의 소비와 다르다. 불황일지라도 다른 소비는 줄여도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즉 정서적 가치의 소비를 급격히 줄이지는 않는다. 일정한 항구적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항구적 수요를 주도하는 것은 컬렉터를 포함한 폭넓은 미술애호가 계층이다. 그들은 주식투자의 ‘개미군단’처럼 예술 소비의 생태계를 떠받치는 주축이다.
미술의 소비대중인 컬렉터가 갖는 중요성은 뉴욕의 전설적 아트 딜러 마이클 핀들레이가 최근 펴낸 미술의 가치(The Value of Art)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컬렉터를 화상 비평가 전시기획자와 함께 미술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축이며, 그 중요성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고 봤다. 또 정서적 가치가 힘을 발휘하는 미술시장은 시장논리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영역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최근 국제 미술시장은 불경기가 무색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는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타전되고 있다. 런던의 프리즈 아트 페어, 홍콩 아트 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같은 신생 아트 페어는 수많은 컬렉터로 북적대고 있다.
저변 확대에 소매 걷어야
국내시장은 왜 이런 국제적 흐름과 엇박자를 보이는 것일까. 답은 명확하다. 예술 소비 생태계를 떠받치는 미술애호가와 컬렉터 계층의 저변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다른 소비는 줄여도 예술에 대한 소비는 줄이지 않겠다는 개미군단 부재의 당연한 결과다. 애호가는 드물고, 단기 가격동향에 민감한 ‘투자자’만 넘쳐날 뿐이다. 불황 때마다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애호가의 광범한 지지가 있어야 미술품의 상품가치도 자연스레 배가된다. 설사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지는 않더라도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한 그들의 폭넓은 지지가 미술품의 상품가치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피카소와 뭉크의 천문학적 그림 값은 애호가의 사랑을 빼고선 생각하기 어렵다. 미술품 가격은 그런 대중의 지지와 미술사적 가치를 시장가치로 환산한 것일 뿐이다.
미술시장은 정책적 지원에 의지하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존립하기 어렵다. 미술시장이라는 하부구조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정서적 기능이라는 상부구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그간 미술계는 양식 있는 애호가의 저변을 가꾸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했는가.
정서적 가치보다는 상품가치로서만 고객에게 접근한 것은 아닌가. 프리미엄급 컬렉터에게만 미소 지은 것은 아닌가. 신인작가 발굴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냉철하게 반성해 볼 일이다. 오늘의 미술시장 침체,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
그러나 불황이 힘겨운 것은 미술계뿐만이 아니다. 모든 산업부문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도 미술계만 유난히 심한 몸살을 앓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예술품 소비, 공산품과 달라
예술에 대한 소비는 공산품의 소비와 다르다. 불황일지라도 다른 소비는 줄여도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즉 정서적 가치의 소비를 급격히 줄이지는 않는다. 일정한 항구적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항구적 수요를 주도하는 것은 컬렉터를 포함한 폭넓은 미술애호가 계층이다. 그들은 주식투자의 ‘개미군단’처럼 예술 소비의 생태계를 떠받치는 주축이다.
미술의 소비대중인 컬렉터가 갖는 중요성은 뉴욕의 전설적 아트 딜러 마이클 핀들레이가 최근 펴낸 미술의 가치(The Value of Art)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컬렉터를 화상 비평가 전시기획자와 함께 미술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축이며, 그 중요성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고 봤다. 또 정서적 가치가 힘을 발휘하는 미술시장은 시장논리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영역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최근 국제 미술시장은 불경기가 무색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는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타전되고 있다. 런던의 프리즈 아트 페어, 홍콩 아트 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같은 신생 아트 페어는 수많은 컬렉터로 북적대고 있다.
저변 확대에 소매 걷어야
국내시장은 왜 이런 국제적 흐름과 엇박자를 보이는 것일까. 답은 명확하다. 예술 소비 생태계를 떠받치는 미술애호가와 컬렉터 계층의 저변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다른 소비는 줄여도 예술에 대한 소비는 줄이지 않겠다는 개미군단 부재의 당연한 결과다. 애호가는 드물고, 단기 가격동향에 민감한 ‘투자자’만 넘쳐날 뿐이다. 불황 때마다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애호가의 광범한 지지가 있어야 미술품의 상품가치도 자연스레 배가된다. 설사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지는 않더라도 특정 작가와 작품에 대한 그들의 폭넓은 지지가 미술품의 상품가치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피카소와 뭉크의 천문학적 그림 값은 애호가의 사랑을 빼고선 생각하기 어렵다. 미술품 가격은 그런 대중의 지지와 미술사적 가치를 시장가치로 환산한 것일 뿐이다.
미술시장은 정책적 지원에 의지하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존립하기 어렵다. 미술시장이라는 하부구조는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정서적 기능이라는 상부구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그간 미술계는 양식 있는 애호가의 저변을 가꾸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했는가.
정서적 가치보다는 상품가치로서만 고객에게 접근한 것은 아닌가. 프리미엄급 컬렉터에게만 미소 지은 것은 아닌가. 신인작가 발굴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냉철하게 반성해 볼 일이다. 오늘의 미술시장 침체, ‘네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ㆍ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