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가 혁신학교에 관한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제한하는 ‘혁신학교 조례’를 심의하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조례안이 초중등교육법 등 상위법에 위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학생인권조례에 이어 또다시 조례 제정을 둘러싼 양자 간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이다.

시의회 교육위원회는 5일 열리는 임시회 회의에서 ‘서울 혁신학교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조례안이 교육위를 통과하면 8일 열릴 전체 회의에서 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이 조례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혁신학교 지정·취소, 운영·평가, 행·재정 지원 등을 심의하는 ‘혁신학교운영·지원위원회’를 시교육청에 두도록 한 것. 조례안이 통과되면 교육감은 위원회의 심의 없이는 혁신학교 지정을 취소할 수 없고, 임의로 평가도 못한다. 또 위원회가 혁신학교 확대를 결정하면 교육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이에 따라야 한다.

조례안은 위원회를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등 당연직 네 명과 외부 위촉직을 합해 20명 이내로 구성하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위촉직 위원 중에서 호선(互選)하도록 했다. 위촉직의 자격은 △시의회 추천자 △교육 관련 시민사회단체 소속자 등이다.

위촉직은 교육감이 위촉하도록 했지만 첫 위원회는 곽노현 전 교육감이 구성해놓은 혁신학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들이 고스란히 승계하도록 했다. 자문위원회는 이 조례안을 발의한 김형태 시의회 교육의원 등 곽 전 교육감의 측근들과 현직 혁신학교 교사들로 구성돼 있다.

시교육청은 조례안이 자율학교의 지정·운영에 관한 교육감의 권한을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어긋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병호 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혁신학교는 초중등교육법상 자율학교여서 교육감의 업무에 속하는데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교육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이어 “조례안이 원안대로 통과한다면 학생인권조례 때와 마찬가지로 재의 요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교육청은 곽 전 교육감이 주도하고 시의회가 의결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지난해 재의를 요구했지만 시의회가 재의결했다. 이후 교육과학기술부가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혁신학교 정책이 다른 학교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문 교육감은 지난달 19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도 “혁신학교에 지정되기만 하면 연간 1억4000만원을 지원하는 것은 훨씬 규모가 큰 다른 학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올 한 해 문제점을 검토한 뒤 지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성향 교원단체들도 서울시의회의 조례안 추진에 반대하고 나섰다. 서울교총 등 20개 교육 관련 단체는 4일 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가 정치적 당론으로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개입하며 서울 교육을 큰 혼란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내 2200여개 초·중·고 가운데 67개가 혁신학교로 지정돼 있으며 32개가 초등학교다.

■ 혁신학교

‘전인교육’을 명분으로 곽노현 전 교육감이 만든 서울의 자율학교 모델. 연간 1억4000만원가량의 별도 예산이 배정돼 영어·예능·과학 분야에서 특화 교육을 진행한다. 전교조 등 특정 정치 이념을 가진 교사들이 이 학교로 몰리면서 교장과 교감의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교육 현장의 비판도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