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 원로 정치인을 비롯한 각계 전문가들은 최근의 정치 실종에 따른 식물정부의 현실화에 대해 여야 모두에 ‘정치력’ 발휘를 주문했다.

이 전 국회의장은 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싸움과 대결의 정치를 끝내고 청와대와 여야 모두 정치력을 발휘해 빨리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며 “양보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청와대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통큰 정치를 하거나,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정부조직법을 다시 개정한다는 조건부로 야당이 정부안을 받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 대해선 “내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그러나 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이 야당에 압력을 가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누리당 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전에 미리 협상을 마무리지었어야 했다”고 비판했고, 민주통합당엔 “대통령이 새 출발을 하면서 내세운 구상과 정치를 일단 밀어준 뒤, 잘못이 있다면 그때 비판하고 반대하는 게 옳다”고 충고했다.

이 전 의장은 파국에 이른 원인 중 하나로 국회법 개정안(국회선진화법)을 꼽았다. 그는 “여야의 합의가 있어야만 법안을 처리할 수 있게 됐는데 이는 국회를 완전히 식물국회로 만드는 후진화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법대로라면 야당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통과시킬 수 없다”며 “시급한 국가적 문제는 야당의 동의 하에 국회에서 표결로 결정하는 방안도 마련해 놨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쟁점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인허가권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담겨있는 만큼 방송 장악 등 야권에서 우려하는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박 대통령의 정치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주의’를 재고해야 한다면서 “정치는 항상 협상의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정치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는 “청와대는 정부조직법을 국정운영 수단으로 보지만, 야당은 대여 및 청와대와의 관계를 판단하는 시금석으로 여기는 등 관점이 달랐다”며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소통이 너무 없어 서로의 이해가 부족했다”고 소통을 강조했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 문화가 없다”며 “야당은 대안 없이 발목만 잡는 구조적 문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정은/이현진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