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건물 기술, 유엔도 인정했죠"
유엔은 볼펜부터 비행기까지 연간 200억달러 규모의 물품과 서비스를 자체조달시장에서 사들인다. 국내 기업들의 유엔 납품비율은 0.3% 내외. 우리나라의 유엔 예산분담률(2.26%)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열악한 현실 속에서 조립식 건축물업체 캬라반이에스(사장 권혁종·58·사진)는 2003년 겁 없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10년간 7800만달러(약 850억원)어치의 조립식 구조물을 공급했다. 업체당 평균 낙찰률이 5~10% 수준으로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유엔 입찰에서 25개 중 15개를 따내며 60% 낙찰률을 기록했다. 권혁종 캬라반이에스 사장은 “한국 기업에 유엔 조달시장은 글로벌시장 진출의 관문”이라고 말했다.

캬라반이에스는 조립식 건축물을 만드는 회사다. 유엔은 조직 특성상 아프리카 등 분쟁 다발지역에 주둔해 빠르게 임시 건물을 짓거나 해체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조립과 분해가 쉬운 건축물을 필요로 한다. 1981년부터 20년 동안 텐트 등에 쓰이는 산업용 섬유 업체에서 수출을 담당했던 권 사장은 유엔을 타깃으로 2002년 캬라반이에스를 창업했다. 그는 “중장비 없이 볼트, 너트로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조립식 건축물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립식 건물 기술, 유엔도 인정했죠"
권 사장은 2003년 유엔 평화유지군 숙소용 텐트 공급 입찰에 뛰어들어 170만달러어치를 처음 납품했다. 사실상 샘플이었지만 이를 발판으로 숙소용 야외 전기설비, 위생설비 등의 입찰에서 잇따라 낙찰자로 선정됐다. 2009년엔 3년 동안 5000만달러 규모 조립식 구조물 공급설치 계약을 맺었고, 최근 1년 추가 연장에도 성공했다.

올 들어서도 경사가 이어졌다. 최근 유엔본부와 1200만달러 규모의 조립식타워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올해 누적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것.

유엔 조달시장은 다른 국제기구 진출의 보증수표와 같다. 권 사장은 “국제축구협회(FIFA),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은 물론 미국 정부나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조달시장에 진입할 때 유리하다”고 말했다. 캬라반이에스 역시 2010년 유엔 주계약 업체임을 증명하는 글로벌 콤팩트회원에 등록된 후 지난해 미국 정부 조달 선도기업으로 선정돼 미국 조달시장에 진출했다.

권 사장은 유엔 조달시장에서의 성공요인으로 ‘수요자 맞춤형 기술 개발’을 꼽았다. 캬라반이에스는 2006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 300㎜ 두께의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과 똑같은 열차단 효과를 내면서 더 가벼운 40㎜ 두께의 벽체패널을 개발했다. 유엔이 환경을 보호하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을 중시한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유엔 조달시장에서 기술과 경험을 인정받은 권 사장은 올해 국내 생활체육시설 분야에 진출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규격화된 조립식 체육관을 공급해 배드민턴, 풋살, 농구, 테니스 등 국내 생활체육 시설을 대중화하겠다는 것. 또 그는 강풍에 쉽게 깨지는 유리온실과 난방비가 많이 드는 비닐하우스의 단점을 개선한 차세대 온실시스템도 최근 개발을 끝내고 중동지역 납품을 준비하고 있다. 권 사장은 “올해 매출은 지난해(130억원)보다 60% 늘어난 2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