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건설적 관계 발전에 관심"…차기 지도자 의지에 달려
에너지·마약조직 퇴치 등 협력 가능한 분야는 많아

중남미의 반미 대표 주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사망함에 따라 미국-베네수엘라 관계 재설정(리셋·reset)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국 관계 변화는 미국과 중남미 반미블록간 관계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한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권력 전면에서 물러선 이후 차베스가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 중남미 반미연대의 상징으로 자리해왔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이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인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확인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앞서 빅토리아 뉼런드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8일 정례브리핑에서 탱고를 추려면 짝이 있어야 한다면서 "관계 개선을 위해선 우리의 의지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측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며 베네수엘라 측의 태도를 강조했다.

양국 관계 변화 여부는 포스트-차베스 베네수엘라 정부의 성향과 의지에 달렸다는 얘기다.

차기 지도자는 아직 안갯속이다.

한 달 내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과 야권 통합연대(MUD)의 엔리케 카프릴레스가 경쟁할 것으로 점쳐진다.

다만 새 지도자가 누구건 간에 차베스 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대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차베스의 반미 발언들도 이전보다 훨씬 누그러지는 추세였다.

그는 2006년 유엔총회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불렀으나 오바마 대통령에는 "사람으로 치면 좋은 남자"라고 하기도 했다.

오바마도 작년 대선 과정에서 차베스가 이란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안보에 심각한 위협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고, 차베스는 "내가 미국인이라면 오바마에게 투표할 것"이라며 화답하기도 했다.

차베스의 후계자 마두로가 연초에 미국으로 특사를 보내 양국 간 관계 복원을 위한 비밀 회담에 나섰다는 보도도 있었다.

양국이 협력할 분야는 많다.

오바마가 이날 성명에서 "민주주의 원칙들, 법 질서, 인권 존중 등을 촉진하는 정책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미국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이런 '근본 문제'들은 옆으로 치워둔 채 협력 가능한 일들을 중심으로 접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해왔지만 경제적 교류는 유지해왔다.

미국은 자국이 쓰는 원유의 10%를 베네수엘라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또 미국으로선 에너지 분야 이외에도 미국에 마약을 공급하는 베네수엘라 조직 퇴치, 대 테러 공조 등 협력할 이슈들이 있다.

핵 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 이란 내 테러세력에 대한 지원 차단 등도 베네수엘라의 협력을 기대하는 영역이다.

지난 2010년 거부된 두 나라 주재 대사의 재파견이 이뤄지는지에서 양국 관계 리셋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