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인한 국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

SPC그룹 계열 삼립식품이 지난달 올렸던 빵 가격을 지난 5일 원래대로 돌려놓기로 하면서 내놓은 배경 설명이다.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한 ‘자발적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다.

가격 인상을 철회한 과정이 석연치 않다. 삼립식품이 지난달 빵값을 올린 사실이 이날 오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기획재정부와 농림수산식품부 등 물가 관련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삼립식품 측에 수 차례 전화를 걸어 배경 설명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삼립식품은 이날 오후 가격 인상을 철회한 것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올리고 나면 으레 관계 부처에서 확인 전화가 온다”고 했다.

‘확인 전화’라고는 하지만 정부에서 걸려온 전화에 가격을 올린 업체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후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한 이후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몰이 잇따라 대규모 할인 행사에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빵값이 올랐다는데 담당 공무원이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을 게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물가를 누르는 것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지난해 초 품목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관리토록 하는 ‘물가안정책임제’를 도입했다. 1970년대식 ‘쌀 차관’ ‘배추 국장’이란 말까지 다시 나왔지만 효과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다. 1년 이상 억눌렀던 가격을 대통령 선거 이후 한꺼번에 올리는 ‘용수철 효과’를 일부 용인했던 것도 이들이다.

‘쌀 차관’ ‘배추 국장’이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롯데마트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빅마켓 영등포점에서 판매하는 ‘신라면(30개)’ 가격은 지난달 말 1만7290원에서 6일 1만6180원으로 내렸다. 이 점포에서 불과 1㎞ 거리인 코스트코 양평점이 같은 제품을 싸게 판매하자 이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이에 대응해 코스트코 역시 가격을 추가로 내리며 경쟁을 벌인 결과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의 힘은 ‘쌀 차관’ ‘배추 국장’보다 세다.

유승호 생활경제부 기자 usho@hankyung.com